GOSPEL LIFE 18 누가복음 8:26-27 변화(shift)
GOSPEL LIFE 18 누가복음 8:26-27 변화(shift)
주님과의 만남은 마치 코로나시대에 요구되는 총체적 변화(shift)와 같이 겉모양만이 아니라 속까지 바뀌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만날때 우리는 “악한 영이 나간자로 변화됬습니다.”
오늘본문에 소개되는 거라사의 광인을 성경은 귀신들린자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뒤에는 귀신이 나간자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귀신이란 악한영에 지배되어 원치않는 말과 행동을 하게되는걸 말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흔히볼수있는 현상입니다. 화가나거나 미워지거나 슬퍼질때 나도 모르게 그감정에 끌려가 원치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걸통해 예수믿는자도 악한영의 영향을 받을수있다는걸 깨닫습니다. 롬7: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의 원인을 마12장에서 집이 비워져 있는 원리로 설명했습니다. 집이 비워져 있으면 악한영이 다시들어올수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배가고프면 아무것이나 채우려고 하는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솔루션은 예수를 만날때 악한영이 떠난 자리를 성령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부른사람은 쓸데없는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어둠의 권세는 빛으로 이겨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안에 성령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를 만날때 우리는 “옷입은 자로 변화됬습니다.”
성경은 오늘 두번째로 그가 옷벗은 자에서 옷입은자가 되었다고 소개합니다.(35절) 옷은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옷을 입거나 옷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바뀌게 됩니다.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복을 입게되고 잠자는 사람은 잠옷을 입게 됩니다. 반대로 경찰복을 입으면 마치 경찰이 된것처럼 행동하고 죄수옷을 입으면 마치 죄수처럼 거칠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예수를 만날때 단순히 구원받은게 아니라 예수의 옷을 입게 됫다고 말합니다.(갈3:27) 우리는 모르겠지만 우리주변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다고 보는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답지 않게 말하고 행동할때 욕을하거나 시험에 들게 되는것입니다. 놀라운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옷을 입고 있다는것을 날마다 인식하고, 나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될때 그옷이 우리를 변화시킬거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입니다. 오늘도 이사실을 알고 가정에서 학교와 일터에서 그옷에 합당하게 변화(shift)되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예수를 만날때 우리는 “삶의 패턴이 변화됬습니다.”
거라사의 광인은 무덤에서 살면서 여러사람을 상처주던 삶의 패턴에서 예수 만난뒤 가정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예수의 생명을 전하는 새패턴을 살게 되었습니다.(39절) 제임스클리어가 쓴 “아주작은 습관의 힘”이란 책을 보면 사람들은 문제를 마주할때 긍정적 삶의 패턴과 부정적 삶의 패턴으로 반응한다고 정의했습니다. 긍정적이란 내앞에 마주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그문제를 통해 삶을 발전시키지만 부정적 패턴의 사람은 문제를 스트레스로 반응하며 심지어 자살까지 끌고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점은 이것이 패턴이 되어 반복적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는 점입니다. 감사한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이 저주의 패턴을 멈출수 있다는 점입니다.(갈5:24) 예배드리기전에 싸우던 한 부부가 예배때문에 잠시 멈추는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분노, 미움, 두려움, 걱정의 패턴이 발생할때 십자가의 예수를 떠올리면 순간적으로 그 패턴을 멈출수있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변화입니다. 우린 예수로 변화되었습니다. 이한주도 이 변화를 기억하며 예수의 삶을 사는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 이번주 목장 나눔 주제
1) 요즘내속에 채워야 할것이 있다면? 나는 무슨옷을 입고 살아가는가? 변화되야할 패턴이 있다면?
예) 요즘 말씀을 잘못보는것 같다, 나는 학생의 옷만 입고 살아가는것 같다, 화장실에서 셀폰보는 습관
2) 지난 한주 나의 삶과 감사한 것을 나눕시다.
3) 이주에 기도제목을 나눕시다. (개인기도/ 목장과 교회/ VIP/ 선교지를 위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