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4 눅 7:11-15 슬픈 자를 찾아오시는 예수


대강절 4  눅 7:11-15 슬픈자를 찾아오시는 예수 Jesus comes to those who are sad.
우리는 국민소득 7만 불 시대를 향해가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내면은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풍요 속의 빈곤’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나인성 과부처럼, 겉은 화려하나 속은 슬픔이 가득한 인생입니다. 감사한 것은, 그런 인생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를 일으켜주신다는 점입니다.

1) 나를 일으키는 것은 “예수님의 불쌍히 여김입니다.” It is Jesus’ compassion.
우리의 인생을 일으키는 주님의 첫 번째 방법은 ‘공감 100%’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이는 단순히 스쳐 지나간게 아니라 깊은 관심으로 유심히 관찰하셨음을 뜻합니다. 불쌍히 여기다’는 상대의 아픔을 온전히 함께 느끼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2:18) 우리도 주변을 깊이 바라보며 배우자, 자녀, 동료의 아픔을 판단하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공감해 줄 때, 예수님의 일어섬이 시작될 것입니다.

2) 나를 일으키는 것은 “예수님의 플랜B 입니다.  It’s Jesus’ Plan B
예수님이 과부에게 말한 “울지 마라”는 표현은 새로운 대안을 가진 권위있는 명령이었습니다.(13절) 왜냐면 예수님에게는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실 ‘플랜 B’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슬픔에 함몰되는 이유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플랜 B’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우리가 시험속에서도 기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약1:2). 왜냐면, 하나님이 지금 겪는 고난 뒤에 예상치 못한 더 좋은 플랜B를 예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울지마라”는 명령을 믿고 다시 일어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나를 일으키는 것은 “예수님의 터치 입니다. It’s Jesus’ Touch
예수님은 두가지 터치를 통해 죽었던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하나는 부정한 관(시체)에 손을 터치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율법상 시체를 만지면 죽음이 전가되어 부정해지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손을 대자 오히려 죽음이 멈췄습니다.(14-15절) 그리고 선포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젊은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우울과 슬픔에 전염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절망 속에 죽어가는 가족과 VIP들을 터치하며 생명의 말씀과 위로를 전염시키는 ‘살리는 사람’이 되야 할 것입니다.

*12/28 이번 주 목장 나눔 및 기도 This week’s sharing and prayer topics
1) 나의 공감이 필요한 사람은 누굴까요? 나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플랜B는? 이번주 내가 터치해야 할 사람은?
예) 남편의 마음을 너무 몰라준것 같습니다. 아이의 말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겠습니다. 진로가 어둡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겠습니다. 이번주 부모님께 전화해야 겠네요. 이번주 목원을 만나겠습니다. 

2) 지난주 삶속에 감사로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 주간의 기도제목과 함께 나눠봅시다.

3) 
목장의 기도제목: 
목원들의 기도/ VIP/ 선교지/ 성탄의 예수를 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송구영신예배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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