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NTUS 3 눅 7:11-15 슬픔 속에 오신 예수
ADVENTUS 3 눅7:11-15 슬픔 속에 오신 예수 Jesus came in sadness
나인성의 과부와 그 일행은 “풍요속의 빈곤”처럼 행복한 도성을 살면서도 아들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장례 행렬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과부에게 오셔서 소망과 생명이 되게 하는 3가지 터치를 보여주십니다.
첫째 슬픔 속에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He took pity on me
예수님의 기적은 항상 “불쌍히 여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이 과부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13절) “불쌍히 여김”이란 ‘남의 아픈 마음을 100% 공감해 주는 걸” 의미 합니다. 이런 공감은 아픔과 슬픔에서 다시 일으키는 하늘의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고난과 고통을 당했기에 우리의 모든 슬픔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히2:18) 물론 이런 공감은 한 두번 봤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야는 한계를 갖고 있기에 오랫동안 살펴봐야 합니다. 이번주에도 불신자 가족들과 이웃들의 슬픈 이야기를 함께 공감해 주며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주는 성탄의 예수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슬픔속에 예수님은 “ 울지 마라 말씀해 주십니다. He encouraged me with words.
“울지말라”는 표현은 명령문입니다. 즉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분명한 대안을 갖고 말하는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15절에 예수님은 과부의 아들을 말씀으로 부활시킬 플랜 B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15절) 여기서 과부와 그 일행이 이렇게 낙심하고 슬퍼한 것은 예수님의 이런 계획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여전히 슬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것을 모르고 여전히 슬픔에 빠져 있는 가족과 이웃들이 많습니다. 성탄은 예수님의 플랜 B를 전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이 되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번 성탄에 복음을 통해서 이 소식을 주변으로 알리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슬픔속에 예수님은 “죽은 자를 만져 주셨습니다. He touched the dead.
성경은 예수님이 관에 손을 댓다고 기록하지만, 실제로는 죽은 시체에 손을 대신 것입니다.(14절) 당시 시체에 손을 대면 죽음이 전가되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민19:13)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죄인이나 부정한 자를 멀리하고 심지어 공동체로부터 격리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대교회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상처나 모난 사람은 공동체에서 멀리 하고 싶어집니다. 왜냐면 상처나 어려움이 나에게 전가될까봐 입니다. 그러나 전가법은 죄만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과 복음의 능력도 전가됩니다. 즉 그리스도인과 죄인이 만날때 우리 안에 예수가 죄인을 정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오늘도 죽은 자들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성탄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2/17 목장 나눔 및 기도
1) 내가 불쌍히 여겨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요즘 나의 삶에 하나님의 플랜 B는 뭘까요? 내 주변의 죽은자는 누군인가요?
예) 목장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을 잘 못봐서 좌절햇는데 여기에도 하나님의 새로운 계획이 있을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한번더 나아가야 겠습니다.
2) 이번 한주 감사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예) 건강과 가정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고중에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평속에 은혜주셔서 감사합니다.
3) 목장 기도제목: 목원들의 기도/VIP/선교지/믿지 않은 가족과 성탄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