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17 사랑의 은혜를 회복하자 고전 13:13
GRACE 17 사랑의 은혜를 회복하자 고전 13:13
우리는 ‘사랑’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사랑을 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약 성경이 기록된 로마시대에는 같은 사랑이란 단어이지만 의미가 다른 단어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에로스’라는 단어의 의미는 “남녀 간의 사랑‘, ’필레오‘라는 단어는 ’친구 간의 우정‘. ’스톨케‘는 ’부모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많은 사랑 중에 오직 ‘아가페’의 사랑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남녀 간의 사랑도, 부모의 사랑도, 이웃 간의 사랑도 모두 ‘아가페’의 사랑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가페의 사랑’은 “가능성이 없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입니다. 쉽게 말하면, “현재의 겉모습이 아니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에로스’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이 의미는 “이미 가지고 있는 현재의 가치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것은 그 여성의 현재의 가치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도 남자의 능력, 성격을 보고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에로스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로스의 사랑’은 지금 현재의 가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가페’, 하나님이 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은 현재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장차 그 사람을 통해 이뤄 나가실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는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무시하던 어부였고, 심지어 사람들의 비난을 받던 세리도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부족했고,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역사하실 미래의 가치를 보시고 그들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아가페’라는 단어의 뜻에는 ‘믿고 기대하고 소망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뜻은 “사랑이 최고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으뜸’이란 뜻은 ‘비교’의 의미가 아니라 ‘크기’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뜻은 “아가페의 사랑을 하면, 믿음도 필요 없고, 소망도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가페의 사랑을 하면 그 안에는 믿음도 있어야 하고, 소망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7절’을 보면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가페의 사랑은 단지 지금의 가치가 아니라 장차 하나님께서 이뤄 나가실 주님의 은혜로 주신 가치를 끝까지 믿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 번째로 ‘가정의 아가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는 물론 자녀에 대한 사랑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해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에로스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자녀를 지금 현재의 모습과 상태로 평가하고 판단합니다. 현재 공부를 잘하는지, 어떤 대학을 다니고, 어떤 직장을 다니고, 얼마나 세상적인 기준으로 많이 가지고 이뤘는지가 그 자녀가 성공했다, 실패했다는 기준이 됩니다.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그것을 이루었는지 이루지 못했는지가 자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세상의 가치인 ‘에로스’로 자녀를 사랑하고 양육한다면, 그 자녀 또한 자신의 현실과 지금의 상황만을 바라보며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행복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삶에 어려움이 닥치고, 힘들어지면 쉽게 낙심하고 실망하고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상의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내 안에 가치를 바라보고 성장하는 자녀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잠시 넘어질 수 있고, 힘들어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 자녀는 반드시 다시 일어나고 다시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자녀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치를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나 언젠가는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부모는 자녀를 바라볼 때,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그 자녀 가운데 하나님이 부여하신 놀라운 가치를 바라보고, 장차 자녀가 이뤄 나갈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며 믿고 소망하면서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웃과 성도들 간에도 아가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 그 사람이 가진 것, 그 사람이 내게 유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일들을 소망하며 그 가치를 바라보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아가페의 사랑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이룰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오늘의 제목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내 삶에 흐리고,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는 있지만, 그 미움이 미움으로 끝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사람이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치를 깨닫고 변화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믿고, 소망하고 덮여주고 감싸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믿음의 성도는 ‘자신을 향한 아가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즉 자신을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이란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그 가치를 믿고 소망하고 견디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아가페 사랑’의 속성을 보면 “아가페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모든 것’이란 뜻이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좋은 상황, 모든 것이 있는 상황에서만 믿고 소망하라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상황, 부족한 상황, 심지어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에 주신 그 가치를 끝까지 믿고 소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견딘다.”라고 말씀할 때, ‘견딘다.’라는 의미는 어려움 가운데 이를 악물고 버틴다는 뜻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치를 바라보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담대히 이겨 나간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장차 나를 통해 이뤄 나가실 하나님이 내 안에 주신 가치를 믿고 소망하면서 담대히 이겨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성도에 주신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끝까지 믿고, 소망하며 견디어 결국에는 그 비전을 이뤄 나가는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인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아가페의 사랑’을 통해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삶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서 믿고 소망 하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고 영적 성장과 부흥을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