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urch3  엡 2:22  교회는 성령의 전입니다 

2021.02.17 22:0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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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urch3    엡 2:22    교회는 성령의 전입니다    183 빈들에 마른풀같이 

    2장은 교회를 이루는 재료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보혈과 모퉁이돌로 지어져 비로소 교회가 됩니다. 근데 이렇게 지어진 교회를 작동시키는 동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예쁜집을 지었지만 그곳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교회가 성령의 전이 되려면 “그리스도안에 거해야 합니다.”

    22절 첫번째 구절이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이 거하는 처소가 되어간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날마다 예수안에 거하는 삶이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성령님은 예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행16:6-7) 그렇다면 예수안에 거하는 삶이란 어떤삶을 말할까요? 요한복음 15장에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비유로 예수님과 붙어사는것이 예수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붙어사는 방법을 “요15:10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려고 노력할때 그열매를 맺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어떤성도님이 요즘 새벽마다 말씀듣고 기도하고 주야로 성경통독하며 배운말씀을 주변사람에게 전하는데 말씀이 살아서 자기를 끌어가니까 너무 행복하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 삶이고 그런 그의 마음안에 성령이 자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님은 상호작용을 합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으로 충만하면 성령이 충만해지고 반대로 성령이 충만해지면 더욱 말씀과 기도생활을 사모하게 됩니다. 윈윈하는 것입니다. “근데 목사님 왜 꼭 말씀중심이어야 할까요? 그냥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잖아요.” 맞습니다. 근데 영적세계는 성령만 있는게 아닙니다. 악한영인 마귀가 오히려 권세를 잡고 있는 영역입니다. (엡6:12) 그래서 이것을 분별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하는것입니다. 오늘도 예수안에 거하는 말씀이 충만한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두번째 교회가 성령의 전이 되려면 “함께 세워져야 합니다.”

     22절에 중반에 바울은 에베소성도들에게 “함께 세워져야” 성령의 전이 된다고 말합니다. 우린 일반적으로 성령님이 교회건물이나 교회당에만 임하는걸로 알고 있지만, 성경은 다른 두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우리 개인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고전3:16) 그리고 또하나는 그런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가 성령이 임하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교회건물이 거룩하고 성령의 임재가 느껴지는것은 그곳에 성령이 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안에 계신 거룩한 성령님이 우리가 거하는 처소를 거룩하게 기름붓고 그곳을 교회로 만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정에 거하면 거기가 교회가 되고, 일터에 거하면 그곳이 교회가 되는것이 맞습니다. 근데 오늘성경에 이것이 “함께 세워져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듯이 부부가 함께 예배할때 더욱 강하게 역사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예배할때 직장동료들과 함께 예배할때 그곳이 더욱 강하게 기름부음받는 교회로 세워져 간다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많은 변화를 만들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성령님이 교회를 넘어 가정과 삶의 자리로 예배를 통해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수세기동안 되지 않던 것을 코로나가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특별히 새벽마다 온라인을 통해서 원근각처에 떨어져있는데도 실시간으로 함께 성령의 처소로 지어져가는 이시간은 기가막힌 시간입니다. 오늘 이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홀로 말씀보고 기도하는것도 소중하지만 함께 말씀보며 성령으로 함께 뜨겁게 기도한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린 함께 세워지고 함께 가정을 기름붓고 있는것입니다. 펜데믹이 끝나더라도 이시간을 누리고 이시간을 통해 더욱 우리의 처소를 성령이 거하는 처소로 세워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세번째 교회가 성령의 전이 되려면 “성령이 거하는 곳이 되야 합니다.”

    22절 바울은 마지막으로 우리와 우리 공동체가 “성령이 거하는 처소”가 된다고 합니다. 이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성도들에게 화를 내며 이말을 합니다. 고전3:16 너희가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왜그랬을까요? 고린도교인들이 옛날에 즐기던 음란과 우상숭배와 더러운것을 먹으며 성령이 거하는 자신의 몸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무시란? 상대가 분명히 내앞에 있지만 마치 없는것처럼 행동하는것을 말합니다. 분명히 성경은 믿는자들안에 성령이 계신것을 약속합니다.(엡2:22, 고전3:16, 롬8:6)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마음안에 주시는 선한생각이나 말씀을 통한 찔림을 자꾸 거부하니까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삶이 바뀌지 않는것입니다. 특별히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리를 죄악의 길로 이끌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모든 집집마다 특히 정문 현관 에 불을 켜놓고 자는 이유를 아십니까? 실제 범죄학에서 도둑은 어두운곳, 아무도 볼수 없는 곳에 들어온다는 심리를 알고 곳곳에 불을 켜놓는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안본다고 생각할때 악한 습관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반복해서 말하는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24시간 성령님이 함께하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을 의식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잘해도 삶이 바뀔수있습니다. 감사한것은 성령님이 보혜사(요14:16)라는 점입니다. 보혜사는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우리가 그런 연약한자인걸 아시고 순간 순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뿐만아니라 능력이 필요하거나 지혜가 필요하면 능력과 지혜를 주시고 질병과 심령을 치유하시고 새힘을 주셔서 당신이 거하는 거룩하고 흠이없는 전으로 만들어가신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을 성령님이 거하는 처소가 되도록 함께 간구합시다.

기도제목: 오늘도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되게하소서 이것을 위해 가정안에 말씀이 충만하고 악한영이 떠나게 하소서 함께 세워갈수있는 배우자나 가족들을 세워주소서 가정이 거룩의 영으로 충만하게 세워지게 하소서 영적제사장이 서게 하소서

중보제목: (목:지도자/사역) 담임목회자/교역자/목자/사역팀장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전이 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맡은일들을 잘 감당하게하소서, 각가정의 영적제사장인 부모들에게 영권을 주셔서 가정을 교회로 세워가게하소서, 민족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을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거룩한 성민나라로 지어져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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