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사이 9 약 3:1-12 말을 길들이십시오.
2025.07.08 07:10
예수인교회
믿음과 행함사이 9 약 3:1-12 말을 길들이십시오. 찬 435/통 492 나의 영원하신 기업
야고보는 지금까지 말만하고 행함이 없는 신앙에 대해 잘못된 “경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만 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신앙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말을 효과적으로 잘 할수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3장의 내용은 이것을 말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말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길들일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1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랍비들이 인기가 많아서 따르는 제자의 무리가 많다보니 누구가 교사가 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말을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들이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그이유를 2절에 기록합니다.
2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가 다 다양한 실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표현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반어적 표현입니다. 즉 우리는 누구나 말 실수가 많기 때문에 가르치는 직업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르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고전12장에 보면 가르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즉 가르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말에 실수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부터 말을 조심히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 말하는데
3 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온 몸을 끌고 다닙니다.
첫째가 짐승인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온몸을 컨트롤 한다고 말합니다. 말이란 원래 매우 예민하고 성미가 급해서 길들이기 어려운 동물중 하나 입니다. 그런데 재갈이란 도구 작은 도구 하나를 입에 물리면서 온 몸을 움직이게 되듯 우리의 입에도 재갈과 같이 제어할수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발에 등이요 내길에 빛”인것처럼 말씀이 우리에게 재갈역할을 합니다. 이것을 4절에 두번째로 배를 비유로 듭니다.
4 보십시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크든 작든 모든 배도 작은 키 하나로 배를 이끌고 움직이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큰 배가 광풍에 밀려갈때도 사공은 키 하나로 방향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과 배의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5절입니다.
5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이것처럼 우리에게 있는 작은 혀도 우리의 말을 움직이고 우리 인생전체를 조정하는 재갈이자 키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작은 성냥개비 하나가 큰 숲을 송두리채 태우듯 혀의 힘이 이처럼 무섭다는 걸 강조합니다. 근데 왜 하필 혀를 불로 비유했을까요? 그 이유가 6절입니다.
6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
혀가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는 것은 혀가 세상의 모든 악과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혀 하나가 온몸을 더럽히고 인생을 망치며, 게헨나란 예루살렘에 남쪽에 위치한 쓰레기 소각장으로 항상 불이 타고 있어서 지옥불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즉 혀를 잘못사용하여 지옥까지 연결된다는 무서운 경고의 말입니다. 한국영화중 유명한 올드보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어린시절 잘못된 거짓말 한마디 잘못했는데 그게 사람을 죽였고, 이 복수로 한 가족이 막장가족이 되면서 끝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거짓말했던 주인공이 자신의 말한마디로 엄청난 여파가 생긴걸 알고 스스로 혀를 자르면서 끝납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말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지 말해준 영화였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남에대해 함부로 말하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안다면 우리 입에 재갈보다 더 큰 돌을 안고 살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혀는 고칠수없을까요? 그것을 7-8절에 말합니다.
7-8절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은 모든 짐승을 길들였습니다. 놀랍죠 이걸 보면 우리의 혀도 훈련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럴수없다고 말하니다. 왜냐면 혀자체가 악이며, 독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본성이 죄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9-12절까지 가망없는 우리의 상태를 말합니다. .
9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도 하지만 동시에 저주가 나옵니다. 이럴때가 많죠. 하나님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저주하고 평생 원망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자주봅니다 이걸 10절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
10-11절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한입에서 쓴물과 단물이 나올 수 있느냐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단물이 나오다가 쓴물에 희석되어 물이 더렵혀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물이 다시 깨끗해진다는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좋은말을 했다가 나쁜말을 하는것은 이미 우리가 죄인이란 증거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무 비유로 마칩니다.
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듯이 그 열매로 그 사람의 본성을 알수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와있는 우리 모두는 사실 한입에서 두말이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왜그럴까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왜 이걸 강조할까요? 이걸 알아야 우리가 가망없고, 주님의 말씀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말만 잘하는 그리스도인도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말에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실수를 적게 하기 크게 3가지를 정리해 볼수있습니다.
첫째 혀에 재갈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채워져야 합니다.
말씀에는 실수가 없기에 말씀을 많이 보고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될때 말에 실수를 줄일수있습니다. .
둘째 불처럼 악한 말을 잘 길들여야 합니다.
말에도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말대신, 거짓없는 말, 유익한 말, 부드러운 말, 긍정적인 말, 성경은 가장 좋은 말로 감사의 말을 꼽습니다. 늘 감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셋째 오직 한가지 말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영광돌리는 말만 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