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사이 5  약2:1-4  당연한 차별을 조심하라.

2025.07.01 07:1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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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사이 5  약2:1-4  당연한 차별을 조심하라.  찬 302장/408장 내 주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신앙생활하다보면 경건이란 단어를 자주사용하는데 경건이란 뭘까요? 영어로는 Godliness “주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이 삶에 나타날때 그 삶을 경건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최고 경건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신10:18)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것, 즉 신약교회 사람들은 세상 문화대로 사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사는 것이 “경건”이었습니다.(약1:27) 오늘 그 중 하나인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1절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

야고보는 “형제 자매 여러분”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가족의 친밀한 인사로 흩어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권면이란 의미입니다. “영광이신 주예수님”이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동격, 즉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존재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처럼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은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것은 “차별”을 말합니다. 원어를 보면 “한 사람에게 얼굴을 든다”는 표현입니다. 즉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갑게 환영하지만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얼굴을 돌립니다. 이걸 위해서 야고보는 당시 자주 일어났던 차별의 모습을 예로 들었는데 그것이 2-3절입니다.  

2절 이를테면, 여러분의 회당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반지를 끼고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도 들어온다고 합시다.

가령 교회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 즉 부자같고 격식있어 보이는 사람이 벤츠를 타고 들어오고 다른 성도는 노숙인처럼 지저분한 옷을 입고 냄새 나는 성도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 본문을 요즘 시대에 맞게 표현했는데, 만약 교회에 동성애자와 귀신들린자, 전과기록이 있는 사람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실 교회란 이런 사람이 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가는곳마다 이런 자들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온다면 얼마 안가서 곧 문닫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여전히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회에 이 차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3절에서 말합니다. 

3절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하고 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특별한 호의를 보였다고 말했는데 원어 해석은 “올려다 보다”는 뜻으로 “섬김의 마음”이 저절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가난한 사람에게는 어떻습니까? 일단 원어표현이 명령어입니다. 아랫사람으로 하대하며 “알아서 앉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 발치”란 “발 아래”로 종들에게 하던 “모욕적인 표현”입니다. 근데 이런 극단적 차별의 모습이 당시 문헌을 보면 신약교회에서 당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왜냐면 자유케 하는 복음의 특징 때문에 신약교회는 부자나 일반 성도보다는 가난하고 압제받는 종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에서 멸시받는 종들은 교회에서도 같은 식탁을 쓰지 못했고, 자리 배치도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즉 “당연한 차별”이었기에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이 아니라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때 이것은 분명한 차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4절에서 강조합니다.

4절 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는 이것은 주님이 가르쳐준 경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장면은 신약교회 성도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왜냐면 “사회적, 세상적 관점”에서 “당연한 차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광의 주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차별이란 거죠. 이런 관점에서 내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당연한 차별”을 할때가 있습니다. 가령 익숙한 사람에게는 막 대하고 큰소리 내는 사람에게는 매우 조심히 대합니다. 차별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라도 더주려고 하고, 미운사람에게는 하나도 아까워하며 은근히 무시합니다. 차별입니다. 우리 목장식구는 인사도 잘하는데 다른 목장 식구는 쌩 합니다. 차별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 속에 차별이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이시대 교회에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아마도 교회 못들어올것입니다. 왜냐면 마24장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가장 낮은자의 모습으로 올 것이기 때문에 문전박대를 받아서 못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내 주변에 찾아 오실것입니다. 어떤모습일까요? 가장 낮은자, 불편한자, 때론 원수같은 사람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그럴때 차별하지 않은 경건한 예수인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신앙안에 당연한 차별을 조심하십시오. 그럴러면

첫째 세상관점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으로 보십시오. 만약 예수님이라면?

둘째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차별을 조심하십시오.

셋째 주님은 오늘 가장 낮은자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믿음과 행함의 조화를 갖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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