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하게 하신 주 16 딤후 4:19-22 문안하는 일꾼이 되십시오
2025.06.20 07:10
예수인교회
나를 능하게 하신 주 16 딤후 4:19-22 문안하는 일꾼이 되십시오. 320 / 통350 나의 죄를 정케 하사
그동안 디모데후서를 보며 바울의 깊어진 신앙과 복음의 열정을 함께 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바울의 문안 인사를 보는데, 바울서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 문안인사는 단순히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는 인사를 넘어서 이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에게 문안 인사도 사역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문안 인사속에 담겨진 영적 축복과 의미들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19절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해 주십시오.
그 첫번째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 그리고 오네시보로에게 문안을 전합니다. 이 두가정의 공통점은 바울의 인생에 가장 힘들때 가장 큰 위로와 도움을 준 가정들이었습니다. 먼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본도(터키 소아시아) 출신으로 로마에 살던 귀족출신이었지만 글라우디오 황제의 반 유대주의 정책으로 쫓겨나 고린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사실 비참하고 고달팠습니다. 그런데 로마서를 보면 바울에게 생명을 바칠만큼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특히 이 부부의 이름 중 아내인 브리스가가 항상 먼저 나오는 이유는 그녀가 초대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줬다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리더십과 말씀의 능력입니다. 행18장에 보면 바울보다 더 뛰어난 말씀을 가졌던 아볼로를 가르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굉장한 여인이었던걸 말해줍니다. 다른 하나는 귀족출신이었다는 점입니다. 브리스가란 이름은 “귀한이름”이란 뜻으로 흔한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 사용되던 이름이다보니 그런 여인으로 추측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부부가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바울과 초대교회를 위해 섬기고 헌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보로는 1장에서도 말했듯이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때와 로마 감옥에 갇혔을때 그를 한결같이 문안하며 섬겨줬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이 고독하고 외로운 바울에게 깊은 위로와 울림이 되는 문안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문안이란 이런것입니다. 나의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지체가 괴롭고 힘들때 그를 찾아 격려하며 일으켜주는 예수님의 생명의 인사인것입니다. 말한마디로 살아나고 작은 도움에 깊은 울림과 감동이 되는 사랑의 표현 이것이 문안인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브리스가부부와 오네시보로는 누구입니까? 그들에게 사랑과 마음을 담아 문안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풍성해 질 것입니다.
20절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앓고 있으므로 밀레도에 남겨 두었습니다
에라스도는 신약성경에 3번등장하는 데 학자들은 그가 고린도지역의 재무역할을 했기에 고린도에 있었음을 밝힙니다. 드로비모는 드로비모도 에베소의 재무역할이었는데 오는 길에 몸이 않좋아서 밀레도에 남은걸 말해줍니다. 즉 이 사람들은 사실 열심히 사역했지만 여러사정으로 끝까지 함께 못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름까지 바울은 일일이 문안하며 축복해주는 모습을 봅니다. 우린 보통 사역을 할때 끝까지 함께 한 분들만 주목합니다. 처음에 시작한분들, 중간까지 함께 한분들이나 또는 중간에 들어왔지만 큰 사역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분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모든 분들도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문안인사에 넣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기쁠까요? 마치 마지막때에 나중된 자 같은 저와 여러분의 이름도 기억해주시는 주님의 문안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또한 이런 이름들을 기억하며 축복해줄 필요가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21절을 보면
21절 그대는 겨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오십시오.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신도가 그대에게 문안합니다.
여기서는 분위기를 달리하며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전에 속히 오라며 조급한 심정을 나타납니다. 이것은 두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지중해 겨울은 항해가 어렵기에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실때 갖가지 사정으로 미룰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안남았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 말했듯이 감옥생활이 너무 춥고 힘들었기에 몇가지 필요한 외투와 책들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안에는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심방을 다닐때 가끔 바빠서 조금 늦을때가 있습니다. 그럼 성도들이 필요로 할때를 놓칠때가 있습니다. 지체간에 돌아보는 문안도 때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기에 언급된 4명의 사람들은 모두 로마교인이었지만 사실 이곳에만 기록되어 있는 유명하지 않은 성도들입니다. 중요한 점은 그런 사람들의 사소한 헌신까지 기억하며 그이름에 문안하는 섬세한 바울을 봅니다. 이걸 통해 우리 주변에 소외 될 수 있는 사람들도 서로 서로 문안하며 일으켜 줄 필요가 있다는 걸 말해줍니다. 몇년전 가수 인순이씨가 어릴적 피부색 때문에 따돌림을 받을때 큰 위로가 되었던 미국병사 루이스란 사람을 찾는 장면이 tv에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인순이씨는 친구들에게 힘든일을 당할때 루이스가 전해준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40년동안 기억했고, 유명해진 후 40년만에 잊혀진 루이스를 찾아서 이번에는 인순이씨가 루이스를 문안하며 “당신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다”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이장면을 보며 예수님을 만났지만 처음에 어리숙해서 다소로 쫓겨났던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13년이나 무명의 시간을 보낼때 바나바는 그를 찾아와 문안하며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바울을 일으켜줬습니다. 이 문안이 없었다면 대사도 바울이 일어날수있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문안인사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새힘을 주고 그리스도께 연결하는 전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린 모두 외롭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연약한 영혼들입니다. 세상이 알수없는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인들끼리 문안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우리주변에 문안이 필요한 분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격려하고 문안하며 서로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
22절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하시기를 빌며,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마지막에 디모데와 여러분으로 편지를 마치는 것은 개인의 편지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는 디모데 개인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 모두에게 주는 권면임을 밝히면서 마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인생의 겨울앞에 서있는 일꾼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사랑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문안입니다. 이런 문안인사를 하려면 3가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첫째 절실한 도움을 주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을 문안하십시오.
둘째 개인 사정중에 있는 사람에게도 문안하라
셋째 무명의 일꾼들에게도 문안하라
주님의 일꾼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알아 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지체들끼리 서로 서로 문안하며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는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입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