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하게 하신 주 15  딤후 4:9-18  떠나는자, 남은자, 돌아온자

2025.06.19 07:15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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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능하게 하신 주 15  딤후 4:9-18  떠나는자, 남은자, 돌아온자  찬384/434 나의 갈길 다가도록

마지막때에 교회안에 벌어지는 일 중, 주님에게서 떠나는 사람, 남은 사람,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바울의 말년에 인간관계를 회상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야 할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9절 그대는 속히 나에게로 오십시오.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 주변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속에서 주변의 관계를 돌아보는데 제일 먼저 디모데를 향해 나에게 속히 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생이 얼마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디모데를 향한 절실함과 간절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가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데마는 골4장에 등장하는 초기 제자였는데 골로새서 빌레몬서에 종종 사랑하는 제자, 누가와 가장 옆에서 사역을 도왔던 충성된 제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약 7-8년 뒤에 디모데 후서를 쓸때는 세상을 향해 바울을 떠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당시 데살로니가는 로마제국의 도시중 가장 큰 도시중 하나로 상업과 쾌락과 향락의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그런 곳으로 갔다는 것은 그런 가치관을 가졌다는 걸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마를 표현할때 세상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어는 “세대를 쫓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롬12:1 이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건만 그는 오히려 세대를 쫓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바울 주변에 충성된 사람이었을까요? 학자들은 그가 처음에는 바울의 멋진 모습을 보며 쫓았을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주 감옥에 갇히고, 갈수록 세상과 반대되는 어려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가롯유다처럼 자기의 갈길을 갔을 거라고 말합니다. 어거스틴이 쓴 “신정론”이란 책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정반대의 구조와 방향으로 운영되는데 데마는 결국 세상의 가치관을 쫓아 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요한 선택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선택할때 항상 버려지는 것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선택하는 순간 주님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레스게와 디도는 사역 때문에 갈라디아와 달마디아(롬15:19)로 간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사람들은 내 주변을 떠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으로 슬퍼허지 마십시오 남은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11절입니다. 

11절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대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십시오. 그 사람은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

누가가 바울 옆에 있었음을 말합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면서 의사로 바울이 전도여행때나 로마 감옥에 갇혔을때 수시로 바울의 주치의로 활동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바울서신의 대부분도 누가가 대필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봤습니다. 문장의 문체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잘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남겨주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꼭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장면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중요한 선교사역 앞에서 책임감 없이 도망쳤던 마가가 바울의 말년에 요긴한 사역자로 택함 받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든 변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때론 말을 듣지 않는 성도나 방해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복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12절 나는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서신에 자주 등장하는(행 엡 골 딛)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였습니다. 그가 디모데를 대신해서 에베소로 파송된 것입니다.

13절 그대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오고, 또 책들은 특히 양피지에 쓴 것들을 가져오십시오.

여기서 그대란 디모데를 말하는데 인근 지역인 드로아에서 외투를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은 곧 겨울이 닥치고 있었고, 바울의 감옥이 매우 불편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책들, 그것도 양피지에 쓴 책은 바울이 현재 상황에 매우 중요해 보이는 책으로 재판자료나 로마 시민권등을 증명하는 증명서들로 예상됩니다. 중요한 점은 디모데에게 중요한 부탁을 할수있는 관계란 점입니다.

14절 구리 세공 알렉산더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여기서 알렉산더의 직업을 밝히는 이유는 당시 알렉산더란 이름이 매우 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딤전1:20에 등장하는 자로 나중에 이단자로 배교한 인물이 되었고, 결국 바울이 재판받을때 불리한 증언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모든것에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역을 하며 이런 경험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우리 삶에 해를 주고 어렵게 하더라도 약해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실 것입니다.

15절 그대도 경계하십시오. 그가 우리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누군가에게 않좋은 평판을 받은 사람을 상대할때 늘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사람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경계하다란 표현은 선을 긋고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6절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에, 내 편에 서서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처음 변론은 1차투옥때를 말합니다. 당시 로마법정의 문화에서 볼때 죄수가 서면 반드시 동료나 변론자가 서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누군가 방해를 했다는 걸 말합니다. 이럴때 우린 화가 나거나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매우 낙심 될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한 허물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용서의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용서의 기도가 여기에 나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17절에 그이유를 밝힙니다.

17절 주님께서 내 곁에 서셔서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주님이 곁에서 힘을 주셨답니다. 여기서 파라클레토스로 성령하나님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단어는 앞절에서 아무도 없었다는 말과 대조를 이룹니다. 즉 스스로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때 성령님이 내 옆에서 나를 돕고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즘 혼자라고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주님의 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점은 그가 이때 감사하게도 로마감옥에서 풀려났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17절 뒷부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위해 그가 감옥에서 풀려났음을 고백하는 구절입니다. 우린 어려운 문제에서 벗어나거나 해결될때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내가 말을 잘해서 해결됬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주님의 의로운 손이 우리를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18절에 기록합니다.

18절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구원하셔서 그분의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바울의 재판과 수많은 어려움중에도 항상 도와주셨던 것이 그사람 그 상황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이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것이 순간 적인 도움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갈때까지 계속될것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할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갑니다. 그중에는

첫째 나를 떠나거나 반대하는 사람(데마나 알렉산더)

둘째 배신했지만 다시 돌아오는 사람(마가)

셋째 내옆에 남은 사람(누가 두기고등)

중요한 것은 주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고 주님 나라에 갈때까지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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