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하게 하신 주 4  딤후1:15-18  복음의 갇힌자가 될때.

2025.05.30 10:3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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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능하게 하신 주 4  딤후1:15-18  복음의 갇힌자가 될때. 찬 320/ 찬350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의 삶을 열심히 살수록 삶이 불편하게 갇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럴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바울의 삶을 통해 조명해 봅시다. 

15절 그대도 알다시피아시아에 있는 사람이 모두 나를 버렸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부겔로 허모게네가 들어 있습니다.

아시아란 지금의 유럽의 중심지인 터키지역의 서쪽에 위치한 로마의 한 도시입니다. 이곳의 수도가 에베소였기에 바울이 3차 전도여행에서 에베소에 3년이나 머물렀기에 많은 사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의 마지막 재판을 받을때 로마에서 아무도 바울을 변호하지 않았고, 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전혀 돕지 않은 걸 기록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두명의 실명을 거론했는데 부겔로와 허모게네입니다. 이 두명에 대해서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지 않지만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당시 바울을 돕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 정도면 어느정도 영향력 있는 리더쉽이라고 봅니다. 거기다가 안타깝게도 바울이 믿었던 사람들이라고 추측합니다. 왜냐면 이 문장을 원어의 뉘앙스로 해석해볼때 놀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한두번 큰 위기나 어려움에 처할때가 있는데 이럴때 더 힘들게 하는것은 “믿었던 사람들이 배신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배신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첫째 자기중심적 사람입니다. 둘째는 거리감을 두는 사람 입니다. 셋째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심리가 우리의 “죄성”이란 점입니다. 즉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배신 할 수 있는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주의 일을 하며 이런 배신을 당할때 다른 한쪽에서 위로와 격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16절부터 시작되는 “오네시보로”입니다. 

 

16절 주님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여러 번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내가 쇠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축복하는 기도로 시작하는데, 주목할 점은 오네시보로만 아니라 그 집 전체를 축복했다는 점입니다. 나 하나의 섬김이 가정과 목장으로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특별히 바울은 오네시보로가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두가지 이유를 기록합니다. 첫째 바울에게 용기를 줬답니다. 현재 바울은 감옥에서 죽음을 앞둔 절망적 상황에 배신까지 당했으니 비참하고 허무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오네시보로는 “용기를 줬다”고 기록합니다. 원어는 리프레시(refresh) 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 리프레쉬가 될까요? 바로, 감사를 떠 올리때 입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힘들때마다 자주 찿아와서 감사하게 해준 것입니다. 둘째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울이 여러차례 감옥에 갇힌걸 좋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예수 믿고 복받을려고 하지 어려워지려고 믿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롬1:16) 복음은 이처럼 세상속에 불편함을 줍니다. 복음 때문에 주일에 놀러가지 못하고, 복음 때문에 용서해야 하고, 복음 때문에 화내지 못하고, 복음때문에 헌신해야 하는것, 복음 때문에 불편하고 갇히는 답답함과 부끄러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오네시보로는 이이런 바울을 더 찾아 온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도 바울처럼 복음 때문에 갇힌자가 된걸 말합니다. 17절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17절 로마에 와서는 더욱 열심으로 나를 찾아 만나 주었습니다.

바울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고 함께 왕따가 되어 준 것입니다. 그것도 더 많이 찿아오며 함께 해줬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과 함께 세상에 왕따가 되어 복음에 갇힌 사람이 된 것입니다. 놀라운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오네시보로를 이렇게 축복합니다.

18절 그 날에 주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대는 그가 에베소에서 얼마나 많이 봉사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날이란 주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성경은 자주 곳곳에서 이런 사역자들에게 주님의 하늘 복과 상급이 있는걸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무런 댓가없이도 복음을 위해 스스로 갇힌자, 사슬에 매인자가 되길 축언합니다. 왜냐면 성경이 이런 자들에게 반드시 상급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대는“은 디모데를 말하는데, 디모데도 이런 오네시보로처럼 복음으로 고난을 당해도 끝까지 충성봉사해야 함을 당부하는 메세지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복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는 삶입니다. 왜냐면 어제도 말했지만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반드시 고난이 발생하는데 이런 고난을 당할때

첫째 버림받고 배신당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렇게 열심히 사셨지만 제자들에게까지 버림 받았습니다. 당연한 걸로 받으십시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닙니다.

둘째 주님이 위로와 용기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네시보로 같은 성령님을 통해서 주변사람이나 자녀 또는 목자들을 통해서 리프레시 감사하게 해주시고 사슬에 갇혀있는 내 마음에 함께 하며 위로해주신다는 점입니다.

셋째 하늘의 상급이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성도 여러분 복음으로 받는 고난과 사슬에 매인 삶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왜죠?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오늘도 복음으로 고난에 참여하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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