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하게 하신 주 1  딤후1:1-2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2025.05.28 09:31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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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능하게 하신 주 1  딤후1:1-2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찬320/350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여러분이 만약 이번주나 다음주에 죽게 된다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무슨 글을 남기겠습니까? 아마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들을 모아서 액기스로 남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쓴 후 약 7년정도 후에 썼는데, 중요한 것은 바울이 2번째로 로마감옥에 갇혀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유서로 썼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목회서신중에도 가장 마지막책이자 가장 중요한 책으로 손꼽고 있습니다. 그는 이책을 통해, 남겨진 디모데와 제자들, 그리고 교회를 향해 간절한 열정과 사랑을 담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이시대에 디모데로 부름받아 사역하는 마음으로 바울의 마지막 유언을 잘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1-2절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

이 구절은 바울이 서신을 쓸때 자기소개로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깊게 생각해 볼 만합니다. 가령 우린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때 나의 가장 자신있는 직함을 소개합니다. 예를들어 OOO박사라든가?, OOO이사라든가? OOO 사장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알듯이 유명한 직함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 가말리엘 제자, 로마 시민권자,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등 유명한 직함은 다 갖고 있었는데 자기를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은 30대 청년 예수의 제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이 직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직함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할까요? 어떤분은 차에다 익투스 마크를 붙였다가 뗏습니다. 왜그러냐니까, 이 표시때문에 운전할때 끼여들거나 과속하거나 불법을 행할때마다 마음에 걸리더랍니다. 그럼 잘못된 행동을 고쳐야 하는데 그 이름을 버린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옷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글씨를 쓰고 다닌다면 여러분은 자랑스러우실것 같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워서 옷을 바꿔 입겠습니까? 깊이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추가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도가 된 바울” 그는 예수님이 불렀지만 이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하며 살아간걸 말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직분으로 다양한 사람을 통해 부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어느 목사님이나 장로님, 또는 집사님이 불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모든 부르심은 하나님의 부르심안에서 콜링되는 걸 확신하셔야 합니다. 롬1:6절에 로마 교인들을 향해 “너희 모두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입을 자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도와 각양의 은사를 따라 하나님의 사역자로 제직자로 부름받은 사람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자꾸 말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의식하며 사람이 좋으면 잘하고 사람이 싫어지면 엉망으로 하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역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말씀한 것입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사역을 했든지 오늘 이후부터 사람이 부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른 사람으로 자랑스럽게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절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

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빕니다.

바울은 그런 부르심속에서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쓰는데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라고 표현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표현이지만 현재 바울이 죽음을 바로 앞두며 자녀가 전혀없는 바울이 차디찬 감옥에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라고 쓸때 어떤 기분일까요? 아마도 이 편지를 쓸때 냉정한 바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실 바울은 디모데와의 약 10년정도 밖에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역하느라 직접 만난 것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애틋한 표현을 쓴다는 것은 평상시 서신으로 깊은 애정을 나누는 관계였음을 말해줍니다. 저는 우리 목자들이 생각났습니다. 가끔 목자들이 아픈 목원이나 어려운 문제를 겪는 목원들을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 자녀들보다 더 기도하고 걱정하는걸 보며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가 이와 같은 영적 사랑이 충만한 관계가 되길 축복합니다.

근데 바울이 이런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기도로 마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길 빕니다.” 이 표현 또한 바울의 서신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인데 유독 디모데에게는 은혜와 평화 사이에 자비가 들어갑니다. 여기서 은혜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이기도 하지만 이미 구원받은 디모에게 그런 의미보다는 늘 마음에 구원의 감격을 떠올리게 해줄 수 있는 어떤 감격과 마음에 감동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사역을 섬길때 마음이 매말라지고 상처를 입을때 마음에 감동의 은혜가 임하면 마음의 상처가 금새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비란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디모데도 실수하고 범죄하며 여전히 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 제 아들 디모데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며 아비의 중보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화”에이레네로 관계의 회복을 말합니다. 가령 사역을 하다보면 미워하는 사람도 생기고 때론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서 관계가 막힐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그 관계의 회복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이 3가지를 자세히 생각해 볼때 저는 바울이 정말로 디모데를 깊이 사랑하며 축복하고 중보하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여러분 우리의 관계가 이런 관계가 되어지길 축언드립니다. 목자가 목원들을 깊이 사랑하고 날마다 그들을 위해 중보할때 목장은 주님의 몸된 천국 공동체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은 오늘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듯 사랑하는 디모데야 사랑하는 정환아 사랑하는 아무개야 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두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자랑스런 그리스도인이 되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란 그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고 말하는, 어딜가나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와 평화를 위해 기도한답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이 은혜가 필요합니다. 언제든 회복할수있는 그리고 우리의 잘못과 실수속에서도 주님의 자비가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늘 화평한 관계를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도 주님의 디모데로 한주을 승리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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