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하게 하신 주 4 딤전 3:1-7 직분을 감당한다는 것은...
2025.04.25 10:29
예수인교회
나를 능하게 하신 주 4 딤전 3:1-7 직분을 감당한다는 것은… 찬 569장/(통442)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디모데전서는 목회서신으로 사도바울이 개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목회서신은 교회에 관한 내용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아갈 때,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문제들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모범이 되시고 분명히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는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시기에 그 안에 여러 직분자들이 세워주셨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결국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인다워질 때, 직분자들이 직분자다워질 때 교회는 교회다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직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지 보겠습니다.
첫째. 직분은 선하고 훌륭한 것입니다. (1절)
본문은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는 것, 그는 훌륭한 일을 바라는 옳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감독’은 오늘날로 목사와 장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모두다 목사와 장로를 하는 것이 좋은 일이고 선한 일일까요? 우선 성경을 해석할 때 본문을 바로 나에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해석방법입니다. 가장 먼저 1차적으로는 대상과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왜, 어떤 배경에서 쓰여 졌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날 우리 교회, 공동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본 후 마지막으로 그 말씀이 지금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1세기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파문당하고, 출교당하고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했을 때입니다. 이 당시 신앙고백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에베소 교회를 함께 이끌어가던 리더들, 직분자들은 목숨을 걸고 헌신하고 책임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날처럼 어깨에 힘주고, 대접받고, 주인행세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완전하게 선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즉 선한 목자의 선한 일은 결국 자신의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감독의 역할과 직분은 결국 선한 일입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맡기신 양들을 위하여 죽는 자리인 것입니다.
둘째. 내가 원하고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1절)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는 것은 훌륭하고 선한일인데, 그것을 바라고 사모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바라고 사모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주로 안 좋은 말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음란하고 방탕함에 대한 욕심을 말할 때 바라고 사모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한 일, 훌륭한 일에 음욕의 단어를 함께 사용합니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하는데 다른 것들을 다 무시하고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원하고 사는 사람들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그러면 “미쳤다”고 말합니다. 정신 못 차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의도적으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 직분은 내 이익보다, 즐거움보다, 명예보다, 자존심보다 더 생각하고 원하는 것, 앞뒤 재지 않고 푹 빠져버린 사람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교사들이 어떻게 순교를 하나요? 바로 이런 마음으로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죽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시에 그런 마음으로 직분을 맡았고, 하나님의 일을 했던 그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입니다.
셋째.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합니다. (7절)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는 비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 다닌다고 말을 하면서 하는 행동은 자신들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더 심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신문 사회면 1면에, 9시 뉴스에 나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은 전체 중에서 아주 일부라고 확신합니다. 너무도 훌륭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일부 이런 목사와 장로의 모습을 보면서 전체 기독교를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나 한 사람이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예수님 닮기를 노력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믿음의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25절은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열매는 서로를 거스른다고 합니다. 둘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2-7절까지 감독이 되기 위한 조건 하나하나를 얻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육체의 욕망 중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결국 감독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나오는 내용들은 우리가 육체의 욕망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사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교회와 교회 밖에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은 좋은 평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직분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니 포기하세요.”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안 그래도 버겁고 무거운 삶을 더 무겁게 하려고 드리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요? 감독의 자리, 목사와 장로의 자리, 목자의 자리, 서번트, 팀장, 집사의 자리는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보고 직분을 감당해야 하나요?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접근하면 우리는 너무도 서글퍼지고, 지치고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선한 일을 감당하다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먼저 받은 은혜”입니다. “값없이 받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내가 이것을 하면 하나님이 이것을 주시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은혜를, 구원을 베풀어 주셨기에 내가 이것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디모데전서 3장 1절에 나온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 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감독의 직분을 잘 맡아서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했기에, 선한 예수님을 만났기에 이제는 그 구원의 기쁨과 감사함으로 자신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선한 예수님을 경험했기에 이제는 자신이 예수님이 맡기신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섬기고 나누기 위해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성령은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기에 하나님의 직분을 사모할 수 있고, 이웃을 향해 섬기고 헌신하고 나눌 수 있기에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 여러분, 안 그래도 바쁘고, 힘든 삶 속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까? 바로 나를 위해 죽으신 선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경험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기에, 그 기쁨과 감사가 있기에 이제는 내가 선한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그 직분을 감당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받았기에, 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기에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향해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기도: 선한 목자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소서, 내가 구원의 기쁨과 감사로 직분을 감당하게 하소서, 육체의 욕망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주신 직분을 감당하게 하소서, 바른 말씀 위에 믿음을 세워가게 하소서.
중보기도(금:선교지/모든예배/교회행사): 목장, 새벽, 주일예배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넘치게 하소서, 행복페스티발을 인도하시고 VIP들이 복음을 듣고 변하게 하소서, 선교지에 필요한 것을 넘치게 하시고 선교사님들의 건강과 평강을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