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새5 눅 23:44-47  십자가에 죽은 사람

2025.04.18 09:2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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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5  눅 23:44-47  십자가에 죽은 사람    찬269/통 211 그 참혹한 십자가에

다섯번째 마지막 날,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이 선고 된 후,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앞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채로 가시면류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박혀 십자가에 달립니다. 이때 좌편강도와 우편강도와의 대화 후 숨을 거두는데, 이 마지막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의미 두가지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십자가에 죽은 사람은 “휘장이 찢어진 사람”입니다. A person whose barriers have been broken down

오늘 본문 44-45절을 보면 “어느덧 낮 열두 시쯤 되었는데, 어둠이 온 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예수님이 운명할때 약 3시간정도 개기일식이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장면을 아들의 죽음을 철저히 외면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으로 해석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이순간 만큼은 철저히 죄인으로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절인데 눅23:45 는 빛을 잃고, 성전의 휘장은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 예루살렘 성전안에 성소의 휘장(커튼)이 찢어집니다. 왜 성전에 휘장을 쳐놨을까요? 이것은 출애굽 성막때부터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의 간격(gap)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거룩이기 때문에 혹여라도 죄인을 마주하면 죽여서 죄를 깨끗이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간격을 유지시켜 휘장으로 막아놓은 것입니다. 이때 휘장은 절대로 찢어지지 않는 소재로 두깨만 15cm로 만들어 졌습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장벽과도 같습니다. 근데 이 휘장이 아래서 위로 찢어진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고 기록합니다.(마27:51) 즉 인간이 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휘장을 찢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모든 인간의 죄가 용서 받았고 이젠 누구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열어준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줍니다. 가령, 우리가 누군가와 사이가 안좋아질때 그 관계에는 강력한 휘장이 쳐집니다. 절대로 찢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사람을 피합니다. 어쩔 수 없는 직장관계라면 웃으며 지내지만 웃는게 웃는게 아닌 관계로 버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오히려 내가 얼마나 괴수인지 깨닫고 용서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용서해 보십시오. 놀라운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열 수 있는 “휘장이 찢어진 사람”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언제든지 우리 인생에 휘장이 쳐질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휘장을 찢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십자가에 죽은 사람은 “아버지 손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A person who leaves it in the hands of his father.

본문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는 숨을 거두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7마디를 말씀했는데 그 마지막 죽음의 말씀이 바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입니다. 중요한 고백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란, 내 인생을 이제 주님께 맡긴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두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생각해 볼때, 사실 예수님의 역할은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 다리가 꺽이지 않아야 하고  무덤에 들어갔다가 다시 부활해야 하는 큰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예수의 시체에 손을 대서는 안됬습니다. 걱정근심 많은 우리 같으면 “내가 죽은후에 저 병사가 내 다리를 꺽으면 어떻게 하지 누군가 내몸에 헤꼬지 하면 어쩌지, 아… 나 이대로 진짜 죽으면 어쩌지,,, 아 미치겠다.” 죽는 순간에도 별별 걱정근심을 했을 것입니다. 근데 예수님은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죽은자, 내 영혼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어느집사님이 세일즈를 하는데 하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나면 근심과 불안함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때마다 몸을 씻고 잠시 5분에서 10정도 무릎꿇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하고 부르는 순간 마음에 평안이 오고 모든걸 맡기고 잠에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영혼을 주께 맡긴 사람의 평안” 입니다. 또 하나, 아버지께 맡긴 사람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처럼, 십자가에 죽었다면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막15:44에 빌라도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제대로 죽었는지 확인해 봅니다. 왜죠? 안죽었으면 다리를 꺽어서 빨리 죽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꾸 우리를 건드려 봅니다. 왜요? 진짜 죽었나 안죽었나 확인해 보기 위함입니다. 험담도 해보도, 미워도 해보고, 억울한 일에 당하게도 하고, 도저히 참지 못하게 건듭니다. 이때 죽은 척 한 사람은 금세 “아야야” 하고 벌떡 일어나서 “내가 죽은 줄 알았지 아유.. 나 아직 안죽었어.” 하며 난리를 치고 조용히 십자가에 다시 올라가서 또 죽은 척 하고 살아갑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 내 영혼을 맡겼다는 것은 이 모든 억울함 속상함도 하나님께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된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반응하지 않는 완전한 죽음에 이르렀을때 놀라운 장면이 기록됩니다. 47절을 보면 “백부장은 그 된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우리가 진짜 죽을때 세상은 감동하고 마음이 움직이면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번 사순절에 십자가에 진짜 죽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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