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특새 1  마21:12-17  성전의 예배를 회복하라

2025.04.14 18:2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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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특새 1  마21:12-17  성전의 예배를 회복하라  찬540/ 통 219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여러분은 항상 첫번째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가령, 대학 수업의 첫번째 오리엔테이션을 놓치면 그 학기 모든 수업이 어려워지듯 첫단추를 잘끼워야 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란, 단순히 세미나나 강의를 듣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만남의 첫번째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출13장에 하나님이 재물을 받을때, 첫새끼 첫재물 첫째 맏아들을 좋아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존중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때도 항상 중간부터 들어오지 마시고 첫번째 시간에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을 노력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에도 천지를 만드신 후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건이 가인과 아벨의 예배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에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첫번째로 어디를 가십니까? 성전의 예배당을 청소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예배가  첫째가 되야 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첫번째가 되야 하는 이 예배생활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예배의 성전뜰을 회복하라”  12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예수님은 고난주간 첫째날에 갑자기 성전뜰에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 하셧습니다. 당시 성전뜰에는 각종 사고 파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돈을 바꿔주는 사람, 각종 제물을 파는 사람등입니다. 성전뜰이란 원래 성전에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 주님앞에 제사하기 전에 자신의 정결함을 돌아보고 기도하며 자기를 준비하는 경건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워낙 멀리서 오다보니 미처 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방 돈을 환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흠없는 양이나 소를 잡아온다고 해도 오는 중에 상처나거나 더럽혀지기 일 수 였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준비하는 뜰에서 이것을 사고 파는 일들이 생긴 것입니다. 저도 어릴때 생각해보면 교회 들어가기 전에 잔돈 바꾸기기 위해 교회 앞 구멍가계에서 껌하나를 사곤했습니다. 그때 저는 “야 교회 앞에 이런 가계가 잇어서 다행이다”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성전뜰에 이것 장사꾼들이 있는것은 예배를 위해 좋은 것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도움이 됬을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기록을 보면 유월절 같은 성수기에는 물건값의 3-4배가 오르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 각종 거짓말과 흠이 있는 양이나 소를 속여서 파는 일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즉 예배를 돕는자나 예배를 드리는 사람, 모두 장사꾼이 된 것입니다. 장사꾼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이익을 남기려는 마음”입니다. 손해 안보고, 편해지고 좀더 이익을 남기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는 그반대가 되야 합니다. 희생과 헌신의 재물”을 드리는 자리입니다. 주님을 위한 수고와 봉사를 올려드리는 자리가 변질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배를 돕는게 아니라 예배를 망치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의 기본은 편함이 아니라 불편함이 되야 합니다. 이익아니라 희생이되야 하고 헌신의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고난 주간 첫째날 나의 성전뜰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배의 마음을 회복하라.” 13

   예수님은 뒤이어 이번에는 장사꾼이 되버린 예배자들을 향해 이런 말씀을 선포합니다.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 기록된 바란 렘7:11절에 예레미야가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모든 성도들에게 던진 말입니다. 거룩한 예배를 드리려 오지만 그 마음에는 중심에는 하나님 없이 멍하게 예배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꾸짖으며 던진 말입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상대의 눈빛이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가 내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가 그랬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성전의 예배는 멍하게 있다가는 곳이 아니라 분명하게 하나님과 대화하고 영적교감을 느끼고 돌아가야 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쓴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라는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주일아침 한 가족이 예배당을 나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삐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교회를 들어가며 말합니다. 엄마 아빠 오늘은 예배시간에 졸지마, 나 챙피해 죽겠어” 그날 따라 설교가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빠는 또 졸다가 성경책을 떨어뜨렸습니다. 엄마는 계속 몸을 좌우로 흔들며 졸고 있습니다. 아이는 화가나서 “엄마 아빠 졸지말고 빨리 요금내고 집에 가자.”

우스개 소리같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의 예배모습이자 현대 우리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 걸까요? 예수님은 요4장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죠. 신령과 진정이란 프뉴마티와 트를리로 성령하나님과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결합된 영적 예배를 말하는데 쉽게 설명하면 집중력입니다. 보세요. 예배를 제대로 드릴수없는 펜데믹기간에 더 뜨거운 예배를 드렸습니다. 왜그랬을까요? 예배를 편하게 드리지 못하자 더 마음을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잠언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마음의 집중력 싸움입니다. 이번 사순절을 통과하며 성전뜰과 마음의 영적 집중력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예배의 주인을 회복하라.  14-17

     14절에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쫓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십시오. 14 성전 뜰에서 눈 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성경은 예루살렘 성전이 청소되자 제일 먼저 눈먼자와 저는 자들이 들어 왔답니다. 그동안 멸시받고 천대받으며 성전예배에 들어오지 못하던 사람들이 들어오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것은 (사56:7-8) 예배가 회복될때 정말 예배가 필요한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오게 될거라는 말씀이 성취된 장면입니다. 그리고 15절에 병든자들과 아이들이 예수님을 메시야 구원자로 찬양하자 율법학자들이 야단칩니다. 이때 주님은 시편8:2절을 인용하여 “메시야가 젖먹이들의 찬양을 받게 될거라는 것을 못들어봤냐?”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 말은 지금 내가 진짜 성전의 주인이 될거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성전을 청소하고 자신이 찬양을 받는 이 장면은 이제 곧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면서 외형적 성전은 무너지고 내면적 성전시대가 시작되면서 예수님이 성전의 주인이 될거란 걸 예언적으로 나타낸 장면입니다. 실제로,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AD70여년경 로마의 티토스장군에게 공격당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무너졌고 예수님이 모든 예배의 모퉁이돌이 된것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우리는 정말 예수님이 주인되는 에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내가 주인이 되는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어떻게 알수있을까요? 예배를 생각하는 기준을 보면 압니다. 내가 편한예배? 주님이 편한예배? 내가 기뻐하는 예배? 주님이 기뻐하는 예배?, 내가 영광을 받는 예배? 주님이 영광을 받는 예배, 여러분 우리 예배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식당에 주인이 바뀌면 음식이 달라집니다. 서비스도 달라지니까 손님도 달라집니다. 우리의 예배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럴려면 나는 죽고 예수가 살아나는 주인이 달라지는 고난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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