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작정 특새) REBUILD19 느 13:29-31 13장을 쓴 이유

2025.04.10 15:0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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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UILD19  느 13:29-31  “13장을 쓴 이유”   찬 384 나의 갈길 다가도록

느헤미야서는 총13장인데 사실 성벽은 7장에서 완공되었습니다. 그런데 외적성벽만 아니라 내적성벽을 쌓기 위해 8장부터 말씀의 선포와 회개와 각성 그리고 사람들을 이동시키며 예루살렘 전체를 살리는 작업이 12장의 성전봉헌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사실 여기서 끝나면 느헤미야는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13장이 이후에 추가됬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3가지 이유와 함께 느헤미야서를 마무리 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13장을 쓴 이유는 “영적 개혁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29절

   우리가 흔히 느헤미야서를 볼때 성벽을 단 52일만에 세운 속성책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성벽공사는 하루아침에 세워질수없다는 걸 말해주는 책이 느헤미야서입니다. 왜냐면 문제의 13장 때문입니다. 사실 느헤미야서는 12장의 성벽봉헌식에서 아름답게 끝났다면 희망적으로 마쳤을것입니다. 그러나 13장이 추가되면서 느헤미야가 1년간 페르시아를 다녀온후 안식일, 이방인과 통혼, 물질의 십일조, 예배, 절기, 말씀생활등이 이전 삶으로 돌아간것을 기록합니다. 즉 공든탑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걸 보여줍니다. 이것 때문에 13장을 보면 허무하게 느껴져서, 희망의 메세지보다는 절망의 메세지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린 여기서 두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인간의 강팍함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사이에 원래대로 돌아간 이스라엘을 보며 허무함과 분노를 느꼇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느13:29 “나의 하나님, 그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들은 제사장 직을 더럽히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언약을 저버린 자들입니다.” 잘보십시오. 당시 가장 거룩한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이 더럽혀진 것입니다. 이들이 이정도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떨까요? 한마디로 우리는 아무리 좋은 훈련과 교육을 받아도 언제나 실수하고 넘어지며 언약을 헌신짝처럼 깨버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억울하지만 그것이 맞습니다. 왜냐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만약 훈련받거나 노력한다고 변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13장은 그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가망없는 존재란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주님이면 됩니다. 입니다. 이렇게 강팍한 이스라엘도 느헤미야가 돌아왔을때 다시 회복되는 것처럼 주님이 우리안에 오시면 다시 세워주실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한데 중요한 것은 주님의 소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절망이나 어려운 문제에 빠져도 언제든지 주님을 떠올릴때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가망없는 내모습을 의지하기 보다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고 다시 개혁을 시작하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13장을 쓴 이유는 “영적 개혁은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0-31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편한삶을 버리고 고국에 돌아와 목숨의 위태로운 상황속에 오해와 비난을 받으며 어렵게 성벽과 공동체를 세웠건만 잠시 1년을 비운사이에 모든것이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무슨 생각이 먼저 들었을까요? “아 이 공동체는 가망이 없구나, 그만하자” 라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싶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손을 듭니다. 느13:30 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묻은 이방 사람의 부정을 모두 씻게 한 뒤에, 임무를 맡겨 저마다 맡은 일을 하게 하였다. 사람에게 실망하면 그 사람을 다시 신뢰하기 힘든데, 그는 다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일으킵니다. 사실 이 장면은 재림하실 메시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가 신약시대에 오셔서 우리안에 무너진 성벽을 회복했지만 승천한 후 여전히 좌충우돌 살아가다가 다시 재림할때 완전한 성전을 세운다는 걸 상징하는 메세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안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재림의 날까지 무너지고 실수해도 다시 세워주시고, 또 세워 주신다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근데 여기서 느헤미야는 무작정 다시 일을 맡긴 것이 아니라 30절 후반을 보면 “그전의 부정을 모두 씻게 한 후에 임무를 맡겼다”고 말합니다. 실수는 한두번 할때 실수라고 말합니다. 반복해서 할때는 악한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고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기 위해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때 죄없는 자가 돌로치 라고 하시며 그녀를 살려주셨습니다. 근데 이때 주님은 분명하게 그녀에게 말씀합니다. “가서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를 짖지 말아라” 분명하게 지금 지은것은 “죄”라고 가르쳐 주면서 반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잘못할때 분명한 죄에 대한 지적이 있습니다.(요16:8) 그것을 동의 할때 개혁이 시작됩니다. 아무리 반복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것들일지라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을 신뢰하며 다시 한번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는 죄가 있다면 다시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이 새벽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13장을 쓴 이유는 “영적 개혁은 주님만 보며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1

    느헤미야서를 보면 인생의 성벽을 쌓는것이 정말 힘든일이란 걸 봅니다. 그런점에서 느헤미야는 우리와 다른 특별한 리더십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총독이나 리더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다른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딱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로 나갔다는 점입니다. 31절 후반을 보면 느 13:31 후반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시오.” 이것은 처음 1장에서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진 소식을 들었을때부터 한결같이 기도하는 그의 삶의자세 였습니다. 그는 성벽을 짓기전에도, 사전조사할때도, 성벽을 쌓으면서도, 산발랏과 도비야가 도발할때도, 유혹할때도, 두렵게 할때도 한결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3장에 모든것이 물거품이 되었을때, 어떻게 보면 가장 절망했을때, 가장 많은 기도가 나옵니다.(느13:14,22,29,31) 즉 그는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다시 무너졌을때도,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고백했습니다. “주님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나에게 하늘의 능력과 복을 주셔서 감당하게 해주십시오.” 영적싸움은 시선싸움 이라고도 합니다. 마귀는 주님을 향한 나의 시선을 자꾸 문제나 사람에게 돌리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힘빠져서 지치기 때문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이야기”를 아실것입니다. 당연히 토끼가 이겨야 하는데 거북이가 이긴 게임 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토끼가 결승골을 보지 않고 거북이만 쳐다보고 달리다가 잠들어서 진것입니다. 오늘도 다른걸 보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움 걱정 염려, 미움, 증오, 시기, 질투의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 포커스 할때 가정과 목장과 내인생을 일으킬 힘이 거기서 나옵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뜨겁게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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