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작정 특새) REBUILD15  느 13:1-3  내안에 암몬과 모압을 쫓아내라.

2025.04.03 11:3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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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UILD15  느 13:1-3  내안에 암몬과 모압을 쫓아내라.  찬183 빈들에 마른풀같이  

친구나 연인들은 관계가 깊어 질수록 더 닮아가듯이 이스라엘 회중은 성벽 봉헌식 이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 지면서 세밀한 거룩함이 요구 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스라엘 안에 숨어 살고 있는 “암몬과 모압족속”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왜냐면 너무나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하며 이미 반 이스라엘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죄입니다. 성벽재건을 방해했던 산발랏은 암몬사람이었습니다. 내속에 오랫동안 뒤섞여서 신앙을 방해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까요?

첫째 암몬과 모압을 쫓아내려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1

   이스라엘의 성벽이 완성된 후 그들안에 새롭게 시작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습니다(느8:1) 그걸 통해 그들은 잊고 있었던 나팔절과 초막절을 회복했고, 더 나아가 죄를 깨닫고, 회개와 각성을 통해 예배가 회복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성벽이 재건됬어도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기준”이라는걸 말해 줍니다. 말씀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더러운걸 볼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동일합니다. 느13:1 그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암몬 사람과 모압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모세의 책이란 모세오경(창/출/레/민/신)으로 율법이 기록된 책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걸 발견했는데, 그것은 암몬사람과 모압사람이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때 암몬과 모압사람들이 앞길을 막고 저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왜냐면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은 암몬/모압사람들과 뒤섞여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됬을까요?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할 당시 암몬과 모압이 이스라엘을 저주했던것은 무려 1000년전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매우 친밀해져 있었습니다. 마치 10년전에 동성애는 죄였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워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죄는 시간이 지나도 죄입니다. 느헤미야 4장을 보면 산발랏과 도비야가 성벽재건을 방해했는데 이들은 암몬족속이었습니다. 죄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들이 그동안 말씀을 제대로 들으며 살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적어도 지금같은 삶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여기서 청년이란 꼭 나이를 말하기보다는 가치관이 세워지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때에 말씀 하나만 제대로 들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있다는 걸 말해줍니다. 신천지에 들어갔다가 몇달만에 나온 한 집사님이 성경을 3번통독하니까 가르치는 교리가 이상하다는 걸 단번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말은 신천지에 넘어간 그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모세오경을 쓴 모세는 “인생의 형통 원리”를 한줄로 설명합니다. 수 1:8(개역개정)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시편기자도 동일한 말을 합니다. 시1: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인의 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우리가정에 말씀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도록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행하고, 가르치는 거룩의 가정되길 바랍니다.  

두번째 암몬과 모압을 쫓아내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2-3

   1절에서 구별한 암몬족속과 모압족속은 원래 아브라함의 배다른 아들 이스마엘과 조카인 롯의 후손으로(창19:30) 이스라엘과 한 형제지간 이었습니다. (신2:9,19) 그러나 오늘 2절 말씀처럼 이들이 광야에서 선지자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환대해야 함에도 오히려 저주하게 되어 영원히 분리 되었습니다. 여러분 잘못된 것을 분리했다면 다시 붙잡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의 원어의미는 “정결하고 깨끗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구별되다, 분리하다”는 의미입니다.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등의 구별, 분리 입니다. 이게 되지 않을때 인생은 뒤섞여지고 모호한 인생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천지를 창조할때 자세히 보면 빛과 어둠이 뒤섞여 있고, 땅과 하늘이 뒤섞여 있고, 물과 궁창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혼돈, 어둠, 공허”로 정의합니다.(창1:2) 근데 이곳에 하나님이 오셔서 말씀하실때 어떻게 됩니까? 4절에 빛과 어둠이 나눠지고, 6절에 물과 하늘이 나눠지고, 9절에 땅과 바다가 나누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합니다. 즉 거룩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때 이런 분리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빛 가운데로 나갈때 그림자가 작아지고 반대로 빛에서 멀어질때 어둠의 그림자가 더 커지는 원리와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모임과 예배에 참여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 질수록 죄를 미워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느헤미야 공동체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더 깊이 친밀해지자 과감한 인생개혁을 시작하게 됩니다.(3절) 사람은 가까이 하는 것을 닮아갑니다. 거룩한 존재를 가까이 하면 거룩한 영향을 받습니다.(레11:45)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과 기도의 삶이 더 가까워질때 죄에 대한 분리가 강하게 일어납니다. 오늘도 이 거룩의 힘으로 성벽을 쌓는 믿음의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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