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작정 특새) REBUILD13 느12:27-47 성벽의 화룡점정
2025.04.03 11:00
예수인교회
Rebuild 13 느12:27-47 성벽의 화룡점정 359장/통 401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천제 화가가 있었는데, 용을 그리고는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묻자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살아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해서 “화룡점정”이란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 속에 성벽을 재건한 후 이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화룡점정과 같은 봉헌식을 하게 되는데, 이때 두가지 중요한 퍼포먼스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어떻게 하면 나의 가정과 일터의 세운 성벽이 내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벽으로 봉헌 될 수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성벽을 봉헌하려면 “예배와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27-30
보통 건물이 완공된 후 완공식을 할때 가장 먼저 초대하는 사람은 건물을 지을때 가장 많은 힘을 보태거나 돈을 많이 기부한 순서대로 초대됩니다. 그들이 성벽을 만들었음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성벽 완공식은 누가 1순위로 초대됬을까요? 느 12:27-28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되어서, 봉헌식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레위 사람을 찾아내어,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심벌즈를 치며, 거문고와 수금을 타며, 즐겁게 봉헌식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노래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주변 여러 마을 곧 느도바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놀랍게도 제일 먼저 레위인들과 함께 찬양대와 연주자들을 초대합니다. 사실 이들은 성벽을 재건하는데 그닥 큰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제일 먼저 초대될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 성벽의 진짜 실세인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원리입니다. 가끔 성도들의 개업식이나 결혼식 또는 돌잔치나 이사 후 가정에 초대되어 갈때가 있는데 초대된 손님을 배려하여 예배 대신 기도만 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울왕 같은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람만 의식하여 번제를 생략했다가 버림받았습니다. 이런 예배들은 내 가계, 가정, 내 삶이 주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성벽을 정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느12:3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몸을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치른 다음에, 백성과 성문들과 성벽을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올렸다 완공식에 참여하는 모든 제사장들과 레위인 그리고 성벽을 정결하게 하는 예식을 치렀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주문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시 예루살렘 근방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고 옷을 빨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걸 진행하려면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까지 수고롭게 공을 들일까요? 이 성벽이 거룩한 하나님이 거하는 공간이 되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함과 깨끗함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입니다. 어떤 댓가가 치러지더라도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끗함을 단순히 외적 모양만 신경을 쓸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하나님은 외모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중심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했습니다. 내속에 음욕을 품었거나, 형제와 다투었거나, 다른 신을 섬겼다면 값비싼 생명의 물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주 외모만 깨끗이 하다보니까 내면을 신경 못쓴다는 점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최고의 성령충만했던 그도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왜요 내면이 무뎌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성벽이 있다면 내면을 깨끗이 세우려는 거룩함의 성벽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왜 나의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에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소연 할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먼저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집에서 회사에서 도로에서 얼마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정결한 삶을 살고 있는가? 왜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우리에게도 거룩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쌓는 가정과 일터의 성벽은 나의 성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벽이 되야 합니다. 그럴려면 하나님을 의식하며 정결함의 성벽을 세우는 예수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성벽을 완성하려면 “감사와 찬양을 회복하십시오” 31-47
뒤이어 느헤미야는 모여진 무리를 두패로 나눕니다. 31절을 보면 느12:31-32 나는 유다 지도자들을 성벽 위로 올라오게 하고, 감사의 찬송을 부를 큰 찬양대를 두 편으로 나누어 서게 하였다. 한 찬양대는, 오른쪽으로 ‘거름 문’ 쪽을 보고 성곽 위로 행진하게 하였다. 호세야가 이끄는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 그 뒤를 따르고 한편은 호세아가 이끌고 오른쪽으로 돌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36절을 보면 서기관 에스라를 통해 반대로 돌게 했습니다. 이때 이들에게 한가지 주문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와 찬송”이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벽위를 종일 돌며 오직 한가지 감사와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40절에 각각 반바퀴를 돈 후 양문에 도착 했을때 두 회중이 만나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 가면서 또 다시 나팔을 불고 더 큰 소리로 “감사와 찬송”을 부르게 했습니다. 이것은 46절에도 말하듯이 다윗 성전이 완성되었을때, 그리고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 됬을때 행하던 전통 중 하나였습니다. 온 회중이 성벽을 돌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송”을 부를때 온 공동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을 회복하는 걸 상징하는 퍼포먼스입니다. 이것이 곧 예배가 주는 가장 중요한 영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볼까요? 느 12:43 그 날, 사람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기쁘게 하셨으므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함께 기뻐하니, 예루살렘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감사와 찬송의 심포니가 터지자 그들안에 기쁨이 넘치기 시작했는데 이 한절 안에 기쁨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이것은 엄청난 기쁨이 임한것입니다. 근데 이것이 하나님이 이들을 기쁘게 했다고 말합니다.(43절후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쓸때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이 “기뻐하라”입니다. 그런데 사실 바울은 빌립보만 생각하면 악몽 같았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귀신들린 여종까지 고쳐 줬는데 누명을 쓰고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으면 빌립보를 향해 오줌도 안눌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이 넘치는 편지를 씁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그 깊은 피투성이의 빌립보 감옥에서 “감사와 찬송”의 노래를 부를때 어떻게 됬습니까? 감옥문이 열리고 감옥의 간수장과 수많은 죄수들이 구원을 얻는 큰 기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빌립보의 기억은 억울함과 비통함이 아니라 “감사와 찬송”이 만드는 기쁨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와 찬송을 드릴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이 보입니다. 이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