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작정 특새) REBUILD10 느11:1-24  변두리가 중심이 되려면

2025.03.27 18:2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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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UILD 10 느11:1-24  변두리가 중심이 되려면  찬 267/201장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드림을 통해 성벽만 아니라 성전까지 제모습을 찾아가면서 드디어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재건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예루살렘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변두리 지방도시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왜냐면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상태로 140년이나 방치됬고, 물도 없이 언덕에 위치해 있었기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이 수도지 실제는 시골 깡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랬던 예루살렘을 다시 중심지로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 3가지를 집중합니다.

첫째 변두리가 중심이 되려면 “끝까지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 1

   오늘 본문은 11장 1절부터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10장 39절 후반부터 시작됩니다. 느10:39 후반…”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을것이다”… 이 말은 그동안 예루살렘이 버려진 황무지와 같았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앞서 설명했지만 전쟁이후 폐허가 된 예루살렘은 약140년간 버려져 있었고 지리적으로 물이 나오지 않고 경사져서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고 오히려 주변지역들이 살기가 좋아서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으로 이주하여 수도였던 예루살렘은 변두리가 되고 주변 도시가 오히려 중심도시로 발전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140년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변방의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다시 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린 이걸 통해 두가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오래전엔 대부분의 배우자나 자녀들이 함께 교회를 잘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믿음을 떠나 황무한 삶을 살아가는 자녀나 배우자가 있진 않습니까? 또는 우리 가정 우리 목장 우리 가계가 왕년에는 잘나갔는데 언제부턴가 시들해져 변두리처럼 된 곳은 없습니까?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이 약속의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고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는 “성”은 주님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느10:39절 후반에 마치 우리가 성을 지키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우린 예루살렘성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변두리의 페허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성에 느헤미야를 보내시고 사람들을 일으켜서 성을 지켜내고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시127:1 주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우리가정과 기업과 사회는 주님이 세워가고 계시는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걸 놓치면 자꾸 헛된수고를 하고 밤새 깨어 고민하며 속병만 앓게 됩니다. 지혜로운자는 반석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입니다.(마7:24)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기업과 일터를 지키기 위해 주님앞에 나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변두리가 중심이 되려면 “개천에서 용난다”는 걸 알아야 한다.”  2-24

  하나님은 “개천에서 용을 만드는 분입니다.”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 곳곳에 이부분을 강조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20장에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것이다,” (마20:16) 좁은길은 영광이요 큰길은 멸망의 길이다.(눅13:24) 섬기는 자가 높은자요, 섬김을 받는자가 낮은자다.(막10:44) 겨자씨만한 믿음이 태산을 옮긴다.(마17:20) 이것은 신앙에 역설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원리대로 흘러왔습니다. 갈릴리 변두리에서 30대 한 청년이 수백년 유대교의 중심 역사를 깨뜨렸습니다. 12명의 무식한 어부들이 열방에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수천년간 전세계 기독교역사를 지켜온 카톨릭의 아성을 작은 변두리 도시의 한 신부, 루터가 뒤집었습니다. 변두리가 중심이 된 것입니다. 우린 이 신앙의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린 늘 중심이 되길 좋아하고, 태산을 좋아하고, 큰길과 높아지는 것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겨자씨나 좁은길, 또는 낮아지는 것이 늘 불편합니다. 이걸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개천에서 용만들기를 좋아하신다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천에 있다고 저절로 용이 되는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1-24절까지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갑자기 하루 아침에 옮기십니다. 한마디로 엄청난 희생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 줍니다. 저와 아내는 꽃과 화초를 매우 좋아합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어떠한 싱싱한 화초도 저희 손에만 들어오면 금방 죽습니다. 근데 희한하게도 저희 어머니는 어떤 죽어가는 화초나 식물도 살려내는 신비한 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죽인 화초도 어머니께 갖다주면 다시 부활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뭔가 비상한 거름을 주거나 어머니 집이 좋은가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신기한게 아니라 그만큼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수시로 화초를 살피고 필요에 따라 거름과 물을 주었고 늘 꽃잎을 닦아주었습니다. 외출할때도 늘 화초생각이셨습니다. 신비한게 아니라 사랑과 수고와 섬김의 결과였습니다. 신약시대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살아난 사람들을 보면 단순히 연약하고 소외되었기 때문만 아니라 그들은 누구보다 가난한 마음과 갈망과 열정과 믿음을 갖고 주님께 매달렸던 사람들인 걸 보게 됩니다. 그때 변두리는 중심이 된 것입니다. 오늘도 변두리 같은 인생속에 좌절하거나 낙심하기 보다는 그럴수록 더 주님을 붙드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반드시 높이십니다. 그때까지 오늘도 금식하며 기도의 나무을 드리시길 바랍니다.

셋째 변두리가 중심되려면 “변두리에서 순종하십시오”. 1-3,10,12,14,1619,21,24

   1절부터 24절까지 민족의 대 이동이 나옵니다. 문제는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곳에 느헤미야는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순서대로 이주시킵니다. 그 첫째가 모든 지도자들과 족장들을 무조건 예루살렘으로 이주시켰습니다.(1절) 왜냐면 예루살렘은 수도이고 행정도시였기에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당연하진 않을수있습니다. 한국의 세종시를 행정도시로 만들겠다고 결정한것이 벌써 25년전입니다. 그러나 5번의 대통령과 5번의 정권이 바뀌어도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오랫동안 쌓인 관료제도와 전통과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고 행정지도자들과 실무자들이 잘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모든 리더들이 가고 싶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자녀교육도 엉망이고, 마켓도 없고, 치안도 엉망인, 미국으로 말하면 할렘가 같은 도시에 누가 가고 싶겠습니까? 각분야의 리더이기에 똑똑한 머리와 영향력을 가지고 반발하거나 자기 의견을 내며 불순종 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역을 맡은 각지파장(3-9절), 제사장,(10절), 성전지기(12절), 레위인(15절), 찬양대(17절), 성전문지기(19절), 성전일꾼(21절) 등 지도자와 리더들이 그대로 따라주었습니다. 기막힌 순종입니다. 둘째 부류는 자원한 사람들입니다.(2절) 성경을 보니까 특별히 이사람들에게 백성이 “복을 빌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자를 뽑을때 보통은 자원자를 뽑지만 실제는 지명하게 됩니다. 왜냐면 자원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힘든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대단한 순종입니다. 셋째 부류는 제비뽑힌 사람들입니다. (1절) 십분의 일을 추가로 제비 뽑아서 강제로 이주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 누가 제일 순종하기 힘들었을것 같습니까? 예, 바로 3번째 그룹일것입니다. 왜냐면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 뽑아서 세웠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책임감이든, 자원함이든 억지로든 모두가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잘보십시오. 주님의 나라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순종, 노아의 순종, 요셉의 순종, 모세의 순종, 다윗의 순종, 예수님의 순종, 제자들의 순종… 이들의 순종 위에서 세워져 왔다는 점입니다. 그중에는 꼭 순수하게 자원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책임감에 끌려온 사람도 있고, 때론 전혀 납득이 안되어 억지로 끌고 온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의 순종이 모여 하나님의 나라와 공동체가 세워져 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부족한 순종으로 변두리 같은 우리 인생, 우리 자녀, 우리 목장과 교회와 이 민족이 주님앞에 중심이 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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