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작정 특새) REBUILD 3 느7:1-7  온전한 성벽을 세우려면?

2025.03.13 19:0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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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UILD 3  느7:1-7   온전한 성벽을 세우려면?.   찬 302장/ 통408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

느헤미야서의 목적인 성벽은 드디어 6장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끝나야 하는데, 느헤미야서는 13장까지 이어집니다. 왜일까요? 대학만 들어갔다고 갑자기 대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사람과 결혼했다고 곧바로 믿음의 가정이 되는게 아닌 것처럼 느헤미야의 성벽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이것을 위해 이스라엘의 내면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첫째 온전한 성벽을 위해 그는 문지기를 세웠습니다

1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성벽이 재건된 이후에 제일 먼저 성전의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과 레위√사람들을 세웠습니다.(느7:1)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처럼 오늘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성벽의 문지기를 세웁니다. 이것은 성벽에 문지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중국인들은 과거에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난공불락의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네 번의 큰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벽이 아니라 성벽의 문지기가 매수를 당해서 적에게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문지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7:3 나는 그들에게 일렀다. “해가 떠서 환해지기 전에는 예루살렘성문들을 열지 말고, 해가 아직 높이 있을 때에, 성문들을 닫고 빗장을 지르도록 하시오. 예루살렘 사람들로 경비를 세우시오. 일부는 지정된 초소에서, 일부는 자기들의 가까이에서 경비를 서게 하십시오.

당시 성벽의 문은 해가 뜨면 열고, 해가 지면 닫는게 원칙인데, 그는 해가 중천에 뜰 때 열고 닫으라고 말합니다. 거기다가 항상 경비병을 세우랍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문을 통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그 입으로 먹는 것을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늦잠 자는 것은 밤에 시간의 문을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에게 보이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맹모삼천지교”의 고사처럼 3번이나 이사를 갔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좋은 집에 산다고 좋은 가정이 되는게 아닙니다.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좋은 직장인이 되는게 아닙니다. 좋은 교회에 다닌다고 좋은 신앙인이 되는게 아닙니다. 문지기를 잘 세워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은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문을 지키지 못한 군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문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핸드폰을 볼때 문지기가 있습니까? 아니면 무분별하게 봅니까? 말을 할 때 문지기가 있습니까? 아니면 생각나는대로 말합니까?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 문지기가 있습니까? 아니면 감정대로 행동합니까? 아무리 좋은 성벽을 쌓아도 문지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성경은 인생 최고의 문지기를 소개합니다. 10: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는 생명의 문인 걸 분명히 알고 인생의 모든 문에 예수님을 세워보십시오. 어느 성도가 직장에서 세일즈를 하는데 세일즈의 기술을 배웠답니다.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야 상대를 제압하거나 물건을 판매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대화를 할 때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부분이 마음에 찔렸답니다. 그래서 자신은 손해 보더라도 정직하게 말해준답니다. 이 성도는 대화 속에 문지기를 세운 것입니다. 어느 성도는 회사에서 늘 찬양을 틀어 놓습니다. 그 이유는 내 생각이 의식중이든 무의식중이든 늘 주님을 생각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쁜√생각, 두려움, 분노와 미움√등에 사로_잡힐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문지기가 필요합니다. 그 문지기를 통해 외형만 아니라 나의 내면을 더욱 내실 있게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온전한 성벽을 위해 그는 예배자를 세웠습니다.

그는 문지기를 세운 다음, 노래하는 자와 레위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성벽을 쌓은 후에도 도비야의 공격은 계속 되었기 때문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을 세워야 하는데, 갑자기 하나님께 찬양하는 사람과 레위인 즉, 예배자들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성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기 때문입니다.(시 127:1) 그리고 그가 성벽을 세운 궁극적 목적은, 성의 안전을 넘어서, 무너진 하나님과의 예배를 다시 쌓기 위함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목사님, 이들은 예배를 드리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고전을 찾아보면 다행히 나름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벽과 성전이 무너져 있었기에 가정이나 곳곳에 따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에 대한 경건함과 정통성이 사라지면서 10장에 가보면 이들은 이방인과 무부분별한 관계를 가졌고, 안식일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으며, 물질/ 시간/ 가정 등이 자기 소견대로 무질서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의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크게 3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믿음을 갖으라고 합니다. 제가 이번 주일예배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예배에 온다고 하면 두 부류로 나눠질 것입니다. 한 부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여 믿지 않고 그냥 똑같이 예배하는 부류, 다른 하나는 정말 믿고 한주 동안 쫙 빼 입고 대통령과 한마디라도 말해보려고 안되는 영어를 준비해서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여러분은 예배중에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진짜 믿음이 있습니까? 그걸 알려면, 내가 얼마나 준비하고 오는지를 보면 압니다. 그래서 히브리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요4장에서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은 쉽게 “집중력”으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야구 해설 위원으로 유명했던 하일성씨“실력이 비슷한 팀이 경기를 할 때 경기의 승패는 어느 팀이 더 집중력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믿음은 다 비슷합니다. 문제는 집중력의 싸움입니다. 찬양할 때, 기도할 때, 말씀을 들을 때 조금만 더 집중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쉼이 없는 예배 때문입니다.” 예배의 가장 큰 영적 의미는 쉼, 안식입니다. 여기서 “잘 쉰다”는 의미가 뭘까요? 잠을 많이 자거나, 놀러를 가거나, 잠시 하던 일을 멈추면 쉬는 걸까요? 성경이 말하는 안식과 쉼이란, 원어(솨바트)의 의미 속에 “멈춤”이란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전환”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즉 쉼이란 육체적 활동을 멈추고 영혼을 만족시키는 일로 전환하는 걸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일만 하다가 잠깐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가정은 안식을 누립니다. 회사에서 일만 하다가 직원들과 교제를 나눈다면 그것도 안식이 됩니다. 축구를 45분 동안 뛰다가 잠깐 쉴 때 감독의 코칭을 받으면 충전이 되어 후반전에 더 잘 뛰듯이, “전환을 잘하는 사람이 잘 쉬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이걸 잘 못하는 사람은 늘 피곤합니다. 왜냐면 모든 걸 일의 연장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한주간의 육적 활동을 멈추고 영적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 지체들을 만나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한 주를 사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찬양이나 기도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지만, 때론 주방 봉사를 통해, 때론 지체들을 섬기며, 때론 도움이나 위로를 받으며 우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배자를 잘 세워서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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