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UILD 8. 느 4: 10-19,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2025.03.07 09:4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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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4: 10-19,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찬 342장(너 시험을 당해)

‘느헤미야 4장’을 보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던 ‘느헤미야’에게 외부의 적들이 끝없이 공격을 하고, 방해를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 훼방을 담대히 ‘기도의 나팔’을 불며 이겨나갔습니다. 그런데 본문 ‘5장’에서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났던 문제를 말씀합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모든 장에서 느헤미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성벽 건축을 멈추지 않지만, 유일하게 이 ‘5장’만은 성벽 건축이 멈추게 됩니다. 그만큼 외부보다 내부에서 일어났던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보면 ‘1절’에 ‘가난한 백성들을 중심으로 원망의 부르짖음이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건축을 위해 온 힘을 다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하필 그 시기에 지독한 흉년마저 들어, 사람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밭과 포도원, 집 등을 담보로 맡기고 양식을 구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에 세금을 내야 했고, 그 세금을 또 감당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소득이 없다보니까, 결국에는 자신들의 자녀들을 담보로 이자를 내고, 그래도 빚이 계속 늘어나니까 결국에는 밭도 빼기고, 집도 빼기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 가난한 사람들의 그 어려운 상황과 형편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를 더 늘리고, 배를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벼랑 끝까지 몰린 가나한 백성들의 입에서 원망과 울부짖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유다의 총독 ‘느헤미야’가 가나한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던 귀족들과 관리들을 불러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느헤미야’ 자신의 삶을 말하며, 그들에게 가난한 백성들을 돌 볼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 ‘느헤미야 5장’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10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자신도 백성들에게 곡식을 꾸어주지만 이자를 받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또 ‘14절’을 보면 다른 총독들은 자신들의 권리인 녹봉을 매일 ‘은 사십 세겔’을 받았지만 ‘느헤미야’ 자신은 총독으로써 당연히 받아야 녹봉도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은 한 세겔’은 남자 어른 한 사람이 4일 동안 일한 품삯을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총독들은 하루에 남자 어른 한 사람이 160일 동안 일해야 받을 돈을 세금으로 거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또 ‘16절’에 보면 “우리가 밭뙈기를 모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다른 부자들은 가난한 백성의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이용해, 그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빚을 갖지 못하면 담보로 받았던 밭과 포도원과 집을 빼앗아 자신들의 부를 늘려 나갔지만 ‘느헤미야’ 자신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상황에서는 부자들이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고, 더 큰 부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느헤미야’는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이용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에 대해 ‘15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로 ‘느헤미야’는 자신이 도덕적이거나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다’라는 단어는 ‘이르아(יִראָה)’라는 단어인데, 이 뜻은 단순히 두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전능자 앞에 설 때 나오는 경외감과 두려움’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은 이 단어를 ‘경외하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바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자신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도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경외하는 삶은 어떤 삶이겠습니까? ‘신명기 10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지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모든 길을 따르며,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의 길을 따르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란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이웃을 향한 사랑을 통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4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 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첫 번째 두 번째로 나눈 것으로 해석했지만, 원문을 보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자연히 두 번째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의 연약함, 부족함을 외면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연약함과 부족함 가운데서 자신의 세상적인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마땅한 권리마저도 내려놓고 그들을 도왔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 ‘11절’을 해석하면서 ‘느헤미야’가 얼마나 철저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11절’입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과 집을 오늘 당장 다 돌려주십시오. 돈과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을 꾸어 주고서 받는 비싼 이자도, 당장 돌려주십시오” 그런데 여기서 ‘오늘 당장’이라는 문장을 직역 하면 “어느 특정한 그날처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1절’의 말씀은 원문에 맞게 해석을 하면 “우리 ‘그 날처럼’ 모든 것을 다시 돌려보내자!”는 것입니다. “우리 ‘그 날처럼’ 모든 빚을 다 감면해 주자!”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날’은 어떤 날입니까? 구약에서 모든 빚을 탕감하고,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날이 바로 ‘희년’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선한 행동을 자랑하며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희년을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우리, 그날처럼, 희년처럼 한 번 해보자”, “하나님 말씀대로 한 번 해보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심한 가뭄이 들어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죄 가운데 있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성벽을 쌓고 있는 상황입니다. 외부의 적들은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모두가 문제와 고난 가운데 힘들어 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그날처럼 한 번 해 봅시다”, “말씀대로 한 번 해 봅시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을 삶으로 경외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우리 그날처럼, 말씀대로 한 번 해 봅시다”라고 선포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12절’에 모든 귀족들과 관리들이 그 말에 순종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의 진실된 말씀의 선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던 것입니다. 세상의 삶에만 빠져있던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하반절’에 보면 그 놀라운 감격의 상황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이 ‘아멘’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이 장면은 그동안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했던 귀족들과 관리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손종하기로 결정하자, 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환호를 하는 모습인데, 자세히 보면 이 환호는 ‘느헤미야’를 칭송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었던 어려움과 고난의 상황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의 수고와 희생과 말씀대로 살기 위한 외침이 결국에는 그 고난의 자리를 예배하는 자리로 회복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경외하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삶의 문제, 고통, 질병, 상처, 아픔을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는 영광의 자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9절’ 마지막 절에 ‘느헤미야’는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기서 ‘기억해 달라’는 것은 ‘집중해 달라, 기록해 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 표현을 자주하는데, ‘13장 14절’에도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22절’에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한 후에 “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또 ‘31절’에도 ‘산발랏’과 그의 사위를 쫓아내고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기도 응답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기억해 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하나님 내가 이렇게 했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하나님 내가 말씀대로 이렇게 했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한 번 행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그 끝에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기억해 주세요. 하나님! 너무 힘들었지만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 기억해 주세요” 이것이 ‘느헤미야’의 기도의 비결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완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진 리더십과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완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를 기억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몸부림치는 그의 삶과 기도를 기억하시고 그 일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 행함과 이 기도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내 삶의 모든 상황에서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주변의 연약한 자, 고난 가운데 있는 자들을 돌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고, 내 삶의 문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 선교지): 주일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필요와 성령충만을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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