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UILD 7. 느 5: 1-9, 두 가지 법으로 사는 공동체

2025.03.06 00:3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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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UILD 7 느5:1-9 두 가지 법으로 사는 공동체 찬286/(통218)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두 나라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법도 지키며 살아가고 있지만 또한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즉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나, 우리, 공동체입니다. 즉 우리는 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함께 먹고 살아가는 그런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5장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이 공동체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형제들끼리 고리대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법인가? 아닙니다. 당시 모든 나라에서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이기에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 5장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공동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웃 형제의 아픔에 함께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1절)

지금 본문은 유다인 동포를 원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이유가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에만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왜요? 빨리 성벽을 지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한 손에는 창을 들고, 한 손에는 삽을 들고 성벽을 짓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일 신경 못 쓴 것이 농사일입니다. 그들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하나님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는 문제와 세금 문제까지 생겼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돈 또는 먹을 것을 빌렸는데 이자를 받게 되니 재산, 자녀, 심지어 아내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그런데 신명기23:19-20절에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절대 받지 말라고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바벨론 70년을 보내면서 이웃사랑의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는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법에서는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슬픔과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 목장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건강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고통과 슬픔으로 눈물 짓고 있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 해야 합니다. 이용하지 않고 함께 해주어야 합니다.

둘째. 잘못에 거룩한 분노를 낼 수 있어야 한다. (6절)

이스라엘 백성들, 형제들의 울부짖음과 탄식, 슬픔을 보고 한 형제들은 상식적인,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는, 세상 법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을 통해서 재산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명은 같은 상황에서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웃, 동포들의 소식과 탄식을 듣고 실제로 보니까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을까요? 가서 뒤집어 엎고, 욕하고 싸우고 했을까요? 7절에 느헤미야가 보인 행동은 참 놀랍습니다. 우선 분노를 잠시 가라 앉히고 내용을 신중하게 살폈습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분노를 푼 것이 아니라 화를 표현하고서 대회를 열어 하나님 나라의 법을 알려주고 선포했습니다. 거룩한 분노는 절대로 개인의 분노를 푸는 것으로 하면 안 됩니다. 거룩한 분노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욕심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화를 내야 합니다. 내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유익함을 보아야 합니다. 만약 내가 느헤미야처럼 나서는 것이 어렵다면, 함께 동참해주는 것이 거룩한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느헤미야가 이야기 했을 때 그 말에 함께 동참해 주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두 가지 법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9절)

우리는 성경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모든 율법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은 항상 같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일반 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도덕적인 법까지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수준 높은 하나님의 법, 사랑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는데 첫째는 믿지 않는 이방인, 원수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것까지 생각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우리는 ‘하나님 앞에’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모범이 되어야 하고, 늘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있음을 의식하면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제들에게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이 현행법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닫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일반적으로, 현행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인가를 생각할 때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두 가지 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요? 우리는 두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의 백성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법을 지키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법과 도덕법을 뛰어넘는 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법인 ‘사랑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 내 것을 손해 보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나누는 것,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서 섬기고 헌신하는 것,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복음을 위해서 수치를 감당하는 것, 공동체의 어려움을 위해서 내 것을 나누고, 아픈 자들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바로 ‘사랑’이 필요합니다. 더 수준높은 법,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들이 뻔히 아는 상식을 뛰어넘는 더 수준 높은 삶은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과 딱 하나 달라야 한다면 바로 우리가 그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할 때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고, 갑자기 궁금해지고 하나님을 믿고 싶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기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는 거룩한 자녀 되게 하소서, 이웃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 아팔 할 수 있게 하소서, 두 가지 법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를 기억하게 하소서.

중보기도(목:지도자들/가정의 부부/나라): 교회 지도자들에게 ‘성령’을 보여주소서, 리더들에게 영적, 육체적인 건강을 주셔서 사명 감당하게 하소서, 가정과 공동체가 회복되게 하소서, 이 나라, 정부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깨어 있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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