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UILD 6. 느 4: 16-23, 기도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테키아하 그돌라(אהבתו תקיעה))

2025.03.05 09:1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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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4: 16-23, 기도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테키아하 그돌라(אהבתו תקיעה)), 찬 365장(마음 속에 근심있는 사람)

‘페르시아’의 ‘아닥사스 왕’ 밑에서 모든 것을 누리던 ‘느헤미야’는 그 황폐한 땅, 절망의 땅 ‘예루살렘’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게 됩니다. 그런데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먼저 낙심과 패배 의식에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4장 앞부분의 말씀을 보면 이제 드디어 성벽을 쌓는데,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과 같은 대적들이 끝임 없이 훼방을 하고 공격을 합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쌓고 있는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허물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15절’에 보면 그들의 음모가 새어나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음모를 헛되게 하셔서 결국 그들은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날부터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 가운데서 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을 하였다. 관리들은 성벽을 쌓고 있는 유다 백성 뒤에 진을 쳤다.” 여기서 ‘그 날’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적들의 음모가 들어나고 그들이 도망간 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들이 물러갔는데, ‘느헤미야’는 오히려 적들의 공격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 위험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문제가 닥쳤을 때,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 가운데 있을 때일수록 우리의 삶은 힘들지라도 우리의 신앙은 더욱 더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정말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위기는 ‘문제가 해결된 후’입니다. ‘문제가 응답받은 후’입니다. 우리가 문제가 생기고 도저히 내 힘과 능력으로 감당이 안 되면 우리는 두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옵니다. 주님을 찾고, 붙듭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해결되고, 응답되면 어떻습니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다시 예전의 주님 없이도 잘 살아갔던 세상의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간절했는지도 까맣게 잊고, 오늘 하루는 기도 하지 않아도 ‘내일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 중에 ‘게으른 자’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며 경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가진 자를 ‘게으르고 악한 자’라고 크게 책망하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자가 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실까요? 이 ‘게으르다’는 뜻 안에는 ‘변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뜨거운 마음으로 정말 열심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 마음이 변하니까 그 삶도 게을러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에 아무 근심이 없을 때일수록, 이 때를 정말 조심해야 하고, ‘느헤미야’와 같이 영적은 무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 ‘1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 본문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은 한 손에는 말씀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은 한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세상의 삶을 들어 그 말씀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과 떨어져 별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살아가며 그 삶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과 세 명의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 올라가셔서 기도를 하시는데, 그 때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 영광의 모습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께 ‘마태복음 17장 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 여기가 너무 좋습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그러니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말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산에서 내려왔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이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다면,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가정 속에서, 직장 속에서, 목장과 교회 속에서, 삶 속에서 드러내고 그 은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는 한 손에는 복음의 능력과 다른 한 손에는 삶의 현실을 붙잡고 복음의 능력으로 삶의 문제를 담대히 이겨나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벽을 쌓는 이들은 저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였다. 나팔수는 나의 곁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디에서든지 나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와서, 우리와 합세하여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서 싸워주신다” 여기서 ‘나팔’이라는 것은 ‘쇼파르(שׁוֹפָר)’라는 단어로 중동에서 나팔은 ‘은나팔’과 ‘뿔나팔’ 두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 ‘쇼파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양의 뿔로 만든 ‘양각나팔’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그 나팔 소리가 들리면 모이라”고 말하며 “그 나팔이 울리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싸워주신다”라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민수기 10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나팔을 불면 여호와께서 싸우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민수기 10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바로 ‘느헤미야’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붙들며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팔 소리’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스라엘서 나팔 소리는 4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테키아하 그돌라(אהבתו תקיעה)’라는 소리는 ‘아주 강하고 크게 숨이 멈출 때까기 길게 부르는 소리’로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부르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본문의 ‘나팔 소리’가 바로 이 나팔 소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위기의 순간, 문제의 순간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숨이 멈출 때까지, 즉 나의 온 몸과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고, 기도하며, ‘테키아하 그돌라(אהבתו תקיעה)’ 간절히 하나님을 도우심을 구하는 나팔소리와 같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 가운데, 고통 가운데, 울부짖음 가운데 ‘우리 편에 서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고 기적과 능력으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느헤미야’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그의 대적들 앞에 나가 하나님의 사명, 곧 예루살렘 성벽을 쌓아 나갔던 것입니다.

‘두려움’의 어원을 보면, 권투에서 “가드를 내리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나의 문제만을 바라보며 두려워할 때, 사탄은 그 문제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보다 그 두려움을 통해 우리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적과 문제 앞에 ‘기도의 가드’를 올려야 합니다. 기도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의 편에 서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기도 제목: 우리의 문제 앞에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나팔소리같이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믿고 담대히 기도하게 하소서. 그래서 나의 문제와 대적 앞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 부터 지켜주소서. 유스와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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