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UILD 3. 느 2: 11-20, 왜 하필 3일 동안 쉬었을까?

2025.02.27 09:33

예수인교회

조회 수147

느 2: 11-20, 왜 하필 사흘 동안 쉬었을까? 찬 191장(내가 매일 기쁘게)

‘느헤미야’는 한 마디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꿈을 이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느헤미야’를 통해 무기력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케 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이뤄 나가십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장면인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에서 사흘 동안 쉬고 나서,”

그런데 ‘느헤미야’는 “왜 하필 3일 동안 쉬었을까요?” 지도를 보면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는 약 800마일정도로 ‘에스라서 4장’을 보면 그 여정이 ‘약 4개월 정도 걸렸다’고 하는 것을 보면 ‘느헤미야’도 그와 비슷한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휴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말씀은 단순히 휴식을 취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 ‘새번역 성경’은 ‘쉬다’라고 번역을 했지만, ‘개역개정’은 이 단어를 ‘거했다’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리고 이 원문을 보면 이 단어는 ‘하야(הָיָה)’라는 동사인데, 이 단어는 “일어나다, 머물다, 기다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일’이라고 할 때, 이스라엘에서 숫자 ‘3’의 의미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준비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 뜻을 기다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3일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머물렀다’는 것은 단지 휴식만을 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열정이 그의 기도를 앞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의 열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추월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꿈이 아닌 하나님의 꿈을 이루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열정보다 언제나 기도가 먼저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3일 동안 멈추었던’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꾸는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의욕과 열정보다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40장 29절에서 3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바로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 안에 머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2절부터 16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이제 기도의 자리에서 담대히 삶의 자리, 문제의 상황가운데로 나갑니다. 기도의 사람은 단지 기도만 하며, 하나님께서 나 대신 무엇인가를 해 주실 것을 바라며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 가운데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밤에 수행원 몇 명만을 데리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순찰합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내가 탄 짐승이 더 나아갈 길이 없었다”라고 말을 할 정도로 예루살렘 성이 처참하게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 안에는 ‘예루살렘 성벽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길이 없다’는 것은 그 무너진 성벽을 보며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14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면서 그들 가운데 절망, 부정적 생각, ‘할 수 없다’는 패배 의식만이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사람은 그 절망적 상황에서 무엇을 보는지 아십니까? 본문 ‘18절’을 보면, 그 절망의 상황을 보고 온 ‘느헤미야’는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또한 나의 하나님이 선하신 손길로 나를 잘 보살펴주신 일과” 지금 ‘느헤미야’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또 낙심과 절망과 패배의식에 갇혀 무기력에 빠져 있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기도의 사람의 기도는 언제 이뤄집니까? 바로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형편과 건강과 문제가 아니라 나를 향한 선하신 하나님, 내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지금의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이뤄나가실 일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선하신 하나님의 바라보며 나갈 때, 오늘 본문 ‘19절’의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과 같은 대적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또한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신 존재가 아닙니다. 풍랑이 일고, 바람이 불지만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배가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 또한 고난 가운데를 항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택받은 백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0절’에 ‘느헤미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나서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일을 꼭 이루어 주실 것이오.” 바로 ‘느헤미야’는 그 위기의 순간, 그 문제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서 ‘일을 꼭 이루신다’는 말씀을 ‘개역개정 성경’은 ‘형통케 하신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바로 ‘느헤미야’가 대적들이 자신을 모함하고, 비웃고, 업신여기며 공격할 때, 그 순간에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를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있는 풍랑이 아니라 그 풍랑 가운데서 우리를 목적지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형통’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담대함을 갖기를 바랍니다. 늘 우리 주변의 대적들이 우리를 비웃고, 조롱하고, 모함하고, 억울하게 한다 해도, 삶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의 환경과 상황과 가정과 자녀와 건강을 흔든다 할지라도, 우리를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드시기 바랍니다.

‘형통’이란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이란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이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2절’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은 비록 우리가 물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불 가운데를 지날 때에도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결코 그 고난이 그 역경과 문제가 우리를 침몰치 못하고, 태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통’은 우리의 삶에 고난이 없고, 문제가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파도와 수많은 풍랑을 이겨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실 때 여러분의 문제의 파도와 풍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붙들고 담대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 열정과 능력보다 항상 기도가 먼저 앞서게 하시고, 내 삶의 문제 앞에서 흔들지 않고 담대히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꿈이 이뤄지고, 가정과 자녀와 삶의 터전 가운데 선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교회를 섬기는 자들): 목회자들의 성령충만하여 맡은 사역과 영혼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하게 하소서. 교회 제직, 서번트, 목자, 팀장, 봉사자들의 섬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