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44. 사 66: 1-14, 심판 받을 자와 시온의 은혜에 거할 자!

2025.02.20 09:32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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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66: 1-14, 심판 받을 자와 시온의 은혜에 거할 자! 찬 344장(믿음으로 가리라)

지금까지 살펴본 이사야서의 핵심 중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은 반드시 심판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중 어떤 편에 서 있을 것인가를 묻고 또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1절에서 6절’까지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서 있는 자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7절부터 14절”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 즉 “시온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본문 ‘1절’ ‘2절 상반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 받침대다. 그러니 너희가 어떻게 내가 살 집을 짓겠으며, 어느 곳에다가 나를 쉬게 하겠느냐?” 주님의 말씀이시다.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며, 이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보좌로 삼으시고, 땅을 발 받침대로 삼으실 정도로 우리의 그 무엇으로 하나님의 필요를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입니다.

그래서 ‘2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나를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예물을 드리고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한다고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겸손한 사람, 회개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겸손하다’는 뜻은 ‘마음이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붙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 사람’을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온유’라는 뜻이 ‘마음이 착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 단어는 ‘기들여지다’, ‘훈련되어 순종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또한 우리가 많은 들었던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팔복’의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 4절, 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바로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된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제사,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고, 남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기 위한 예물을 드리면서도 자신들은 충분히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3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소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자와 같다. 양을 잡아 희생제물로 바치는 자는 개의 목을 부러뜨리는 자와 같다.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치는 자는 돼지의 피를 바치는 자와 같다. 분향을 드리는 자는 우상을 찬미하는 자와 같다. “이러한 제사장들은 나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뜻대로 한 자들이다. 오히려 가증한 우상숭배를 즐겼다. 가증한 우상들을 진정으로 좋아하였다.” 이 말씀은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렸던 제사 즉 예배를 하나님은 가증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증하다’라는 단어의 뜻은 ‘몹시 싫어하다, 혐오하다’라는 뜻으로 이 단어에서 ‘우상’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어원을 보면, 이 단어는 ‘몸은 행동을 하지만 마음이 떠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헌금도 드리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고 바라보는 삶, 하나님은 단지 주일에 예배하는 것으로, 새벽에 예배하는 것을 끝나고, 나머지 우리의 삶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전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드러나지 않는 삶을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4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렇게 불렀으나 그들이 응답하지 않았으며, 내가 그렇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내가 보는 데서 악한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골라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 오히려 가증이 여기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돌아오라 부르셔도 응답하지 않고, 말씀하셔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기뻐하는 일, 세상의 삶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는 단지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며,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안일함과 착각 속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내게 평안을 주는 말씀, 은혜를 주는 말씀만 골라서 듣기를 원하지, 회개와 사명과 영혼 구원에 대한 말씀은 힘들어하고, 외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듣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듣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부르셔도, 우리는 외면하고 응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대로 믿고,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면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무엇입니까? ‘5절 하반절’ 그리고 ‘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성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오며, 성전으로부터 소리가 들려 온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님의 대적들에게 보응하시는 주님의 목소리이다.” 반드시 그에 대한 보응과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 상반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아,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를 미워하는 백성은 너희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너희를 따돌리며, 이르기를 ‘주가 영광을 드러내어 너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우리가 한 번 볼 수 있게 하여 보아라’ 하고 말하나” 여기서 ‘주님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며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대로 사는데,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 보면 이 핍박과 조롱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의학 전문지를 보면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해산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뼈가 뒤틀리고, 살이 찌끼는 고통이 ‘해산의 고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받게 되는 그 고난을 ‘해산의 고통’에 비유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엄마가 그 해산의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고통보다 더 큰 생명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는 조롱과 핍박과 고통보다 장차 누리게 될 영광과 위로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사도행전 20장 24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바로 ‘7절부터 14절’은 그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부터 14절’ 말씀만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게 하며, 뭇 나라의 부귀영화가 시냇물처럼 넘쳐서 흘러 오게 하겠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젖을 빨며, 그 팔에 안기고, 그 무릎 위에서 귀여움을 받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너희가 이것을 보고 마음이 기쁠 것이며 너희의 뼈들이 무성한 풀처럼 튼튼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권능이 종들에게 알려지며, 주님께서 원수들에게 진노하실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의 삶을 사는 성도에게는 세상의 고난보다 더 큰 위로와 은혜를 주시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예배와 삶이 분리된 가증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는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말씀을 통해 지금도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삶의 결단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가 하나님 앞에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한 자가 되게 하셔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해산의 고통과 같은 고난이 있어도 말씀의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주시는 영광과 위로를 받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교회를 섬기는 자들): 목회자들의 성령충만하여 맡은 사역과 영혼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하게 하소서. 교회 제직, 서번트, 목자, 팀장, 봉사자들의 섬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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