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30. 사 58: 1-12, 금식 해보셨습니까?
2025.01.28 09:38
예수인교회
사 58: 1-12, 금식 해보셨습니까? 찬 435장(나의 영원하신 기업)
지금 한국은 ‘설 연휴’ 기간입니다. 이렇게 명절 때면 꼭 뉴스에 한번 쯤 나오는 것이 ‘과대포장 선물’ 이야기입니다. 겉포장은 크고 화려한데, 막상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은 형편없고, 초라하고, 쓸모없는 것들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도 겉보기는 굉장히 화려한 상자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 안에는 텅 빈 것과 같은 믿음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겉은 형식적인 종교적 행위로 화려해 보였지만,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그것을 강하게 책망하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어 힘껏 외쳐라. 주저하지 말아라. 너의 목소리를 나팔 소리처럼 높여서 나의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알리고,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려라.”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들의 허물과 죄를 크게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크게 외치라’는 뜻은 ‘강력하게 꾸짖고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형식적인 행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경멸하시는지를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마치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않는 민족이나 되듯이,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무엇이 공의로운 판단인가를 나에게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를 즐거워한다고 한다.” 여기서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좋아한다’라는 뜻은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규례 즉 말씀도 깊이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그들은 일주일에 이삼일씩 ‘금식’을 했습니다. 당시 ‘금식’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이 얼마나 깊은가’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께 ‘의로운 판단을 구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겉으로만 화려한 그들의 위선적인 종교 생활에 크게 진노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침묵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며 강하게 묻습니다. 본문 ‘3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보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금식을 합니까? 주님께서 알아 주시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행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우리가 이렇게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금식까지 했는데,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습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왜 응답해 주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즉시 말씀하시는데 첫 번째로 그들의 ‘잘못된 금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3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너희 자신의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첫 번째로 “너희가 금식하는 날 향락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향락’이란 히브리어를 직역을 하면 “땅과 말에서 얻는 기쁨”이란 뜻입니다. 즉 ‘세상에서 얻는 기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예배는 경건하게 잘 드리고, 은혜는 받았지만, 그 예배가 끝나면, 성전 문 밖을 나가면, 그 은혜와 경건은 사라지고, ‘세상에 주는 기쁨을 쫓아 살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일꾼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자신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떠맡기고 착취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싸웠다’고 말씀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다투고 싸우면서, 금식을 하는구나. 이렇게 못된 주먹질이나 하려고 금식을 하느냐? 너희의 목소리를 저 높은 곳에 들리게 할 생각이 있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금식을 해서는 안 된다.” 예배는 거룩하게 드리고, 경건한 것 같지만, 교회 밖으로 나가면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다툰다는 것입니다. 금식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인데, 이처럼 서로가 사랑하지 못하고 싸운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크게 두 번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금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경건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6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여기서 ‘부당한 결박을 푸는 것’이란 ‘사회적 공의’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권력에 의해서 억압당하고, 소외된 억울한 자들, 가난하고, 힘든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개인적인 삶에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눠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네가 먹고 남은 약식이 아니라 지금 네가 먹는 그 양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라’는 것은 이것은 당시 가난과 기근과 전쟁으로 집 없이 다니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같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보면 못 본 척 하지 말고, 너의 옷이라도 벗어서 주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것을 즉시 중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9절 하반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여기서 ‘멍에’라는 뜻은 ‘자신을 위해 남에게 부당한 손해를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마음으로부터 약자들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10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여기서 ‘정성’이란 단어의 또 다른 뜻은 ‘생명, 영혼, 마음’이란 뜻입니다. 즉 이 말씀은 ‘가난하고 곤고한 자들 보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남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히 돈 몇 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과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향기는 나쁜 냄새를 비판하지 않고 자기가 그 악취를 덮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비판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말로 모든 교회와 온 세상의 정의를 세워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고, 우리가 그 대안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기 시작할 때, 그 참된 금식을 하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첫 번째로 “너의 어둠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는 것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님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여기서 ‘새벽 햇살’이라는 의미는 ‘새벽 햇살’이 뜨기 전, 가장 어두운 그 시점에 햇살이 뜬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 우리의 자녀와 가정 가운데 가장 칠흑같은 가장 어두운 그 때, 하나님께서 아침 햇살과 같은 빛을 비춰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바로 우리의 육체적인 건강의 회복도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놀라운 것은 그 ‘주님께서 우리의 앞에 가시고, 우리의 뒤를 호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9절 상반절’ 입니다.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여기에 기도응답의 원리가 있습니다. 기도는 유창하게 해야 응답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야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즉시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우리의 삶의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축복의 생수가 넘쳐난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 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처럼 될 것이다.” 특별히 본문에서 ‘물 댄 동산’이란 표현은 ‘인공 저수지’를 의미합니다. 절대 마르지 않는 저수지를 말합니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안 되는데, 세상 모든 의사들이 다 못 고친다고 하는데 ‘너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물을 대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반드시 됩니다.
여섯 번째로 ‘자손에 대해 이뤄지는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본문 ‘12절’ 말씀입니다. “너의 백성이 해묵은 폐허에서 성읍을 재건하며, 대대로 버려 두었던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를 두고 “갈라진 벽을 고친 왕!” “길거리를 고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한 왕!” 이라고 부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 자손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복을 받는 비결은 바로 그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사랑을 가난하고 힘든 이웃들을 향해 실천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대대로 버려두었던 기초가 무너졌던 그 삶이 다시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25절, 2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의인이 버림받는 것과 그의 자손이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면서 살아가니, 그의 자손은 큰 복을 받는다.”
바로 참된 금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예배를 드리는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니라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참된 금식의 삶,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 제목: 내 삶의 형식적인 예배와 종교적인 신앙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와 신앙의 삶을 회복하게 하소서. 그래서 그 은혜로 내 이웃을 더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 가족과 자녀와 삶이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중보기도(화: 목장/목자): 모든 목장이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영혼구원에 앞장 서게 하소서. 목원들의 삶속에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게 하소서. 목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어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