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25. 사 54: 11-17, 은혜를 춤추게 하는 사람

2025.01.17 08:4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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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54: 11-17, 은혜를 춤추게 하는 사람, 찬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이사야서’를 비롯한 ‘예언서들’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심판과 멸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고난가운데 있던 그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일으키시며, 이전보다 더 큰 축복을 주시겠다”는 은혜를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교하시면, 제목을 “은혜가 춤을 출 때”라고 정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고난 가운데 있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은혜가 임할 때, 그 기쁨과 감격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 고난을 당하고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를 받지 못한 예루살렘아, 이제 내가 홍옥으로 벽을 쌓고, 청옥으로 성벽 기초를 놓겠다. 홍보석으로 흉벽을 만들고, 석류석으로 성문을 만들고, 보석으로 성벽 둘레를 꾸미겠다.” 이 말씀은 지금 ‘바벨론’의 포로로 살며 고난 가운데,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회복의 말씀입니다.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황폐해져서 이제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울부짖으며 절망했던 그 예루살렘 성이 다시 회복되고, 아니 그 이전보다 더 큰 영광 가운데 회복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로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18절,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여기서 ‘새 일’은 바로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고, 이전 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으로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지나간 일’, ‘옛일’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면서, 겪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의 우상들을 무너뜨리시고, 홍해를 갈라 이집트 군대를 무찌르시고, 반석에서 물을 터치고, 만나를 내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고 마시게 하셨던,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6절,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그런데 ‘이사야서 43장’에서는 ‘그것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행하셨던 그 놀라운 일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옛 추억에, 옛 은혜에 갇혀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도 예전에는 이랬지… 나도 예전에는, 젊을 때는 은혜도 많이 받고, 하나님의 일에도 열심히 했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냐?”는 것입니다. 예전의 은혜만 생각하고, 지금은 아무 감동도, 감사도, 은혜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상황과 형편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뜨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을 자신들 약해서, 힘이 없어서 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약해서, 힘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옛날의 은혜에 메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 지금 받은 은혜로 살아가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받는 백성들을 본문 ‘11절 상반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 고난을 당하고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를 받지 못한 예루살렘아” 여기서 ‘고난을 당한다’는 뜻은 ‘억압받다, 가난하다’라는 뜻과 ‘애통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개역개정 성경’은 이 단어를 ‘곤고하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삶의 고난, 삶의 가난과 억압’을 ‘애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가 나온 어원을 보면 이 의미 안에서 ‘심판자 앞에 달려와 자신이 불의로부터 당한 억울함을 호소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억울함을 당하고, 불의한 일에 억압을 당할 때, 하나님께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와 축복을 누가 받습니까? 단지 고난 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 주가 너의 모든 아이를 제자로 삼아 가르치겠고, 너의 아이들은 번영과 평화를 누릴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 안에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번영과 평화가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를 공격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허락한 것이 아니다. 너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너에게 패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도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 대적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믿음대로 살아도 문제가 있고, 어려움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너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너에게 패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6절, 17절’을 보면 그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도, 그 무기를 사용하여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군인들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내 삶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 제목: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가정, 내 삶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게 하소서. 삶 속에서 세상의 계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 선교지): 주일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필요와 성령충만을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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