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23. 사 53: 7-12, 진정한 대속의 은혜를 누리고 계십니까?
2025.01.15 09:38
예수인교회
사 53: 7-12, 진정한 대속의 은혜를 누리고 계십니까? 찬93장(예수는 나의 힘이요)
구약의 ‘이사야 53장’은 성경의 퍼즐처럼, 우리를 위해 오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묘사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53장’은 단순히 메시아로 오신 예수의 고난만을 묘사하는 말씀이 아니라 메사아의 고난과 함께, ‘그렇다면 메시아 예수님께서 왜 그 고난을 받아야 했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바로 죄와 세상의 관점과 중심으로 세상의 계명 속에서 살면서 메시아를 올바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맞이할 준비도 하지도 못하는 자칭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1-6절’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어리석음과 어두움의 죽음의 상태를 말씀하고, ‘7절 이하’의 말씀은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은혜로 고난을 당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신앙과 믿음이 어떤 모습인가?’ 혹시 그 믿음과 신앙도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내 관점, 내 초점에 맞춰 하나님을 나의 기준에 끌어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나 중심, 인간 중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고문’이라는 단어는 ‘심하게 짓누른다’라는 뜻으로 ‘학대하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또 ‘굴욕을 당하다’는 뜻은 ‘낮춰짐을 당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이신 메시아께서 땅에 끌어내려져서 낮춰짐을 당하셨다’는 뜻입니다. 바로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메시아를 학대를 하고 땅으로 끌어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세상의 계명을 따르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하면서도 우리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여기서 ‘체포되다’라는 뜻은 ‘감옥에 감금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신 메시아를 가두고 감금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어느 누구도 그것이 그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에 ‘유죄판결을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죄판결’로 번역된 단어는 성경에서 평소에는 ‘정의’라고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정의’란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 가운데 이뤄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같은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는 ‘유죄판결’, 또 개역개정 성경은 ‘신문하다’라고 번역을 합니다.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 앞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과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면 사람의 기준대로, 우리의 관점으로, 우리가 보기에 옳은 대로, 우리가 보기에 좋은 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신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서 매 순간, 어려움 가운데서,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내 기준과 경험과 상식으로 판단하고 신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기준, 세상의 지식, 사람이 만들어낸 학문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한계 짖고, 그 기준 앞에 하나님을 판단하고 평가하며 하나님을 끌어내려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이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셔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우리의 경험과 상식의 기준에 넣고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8절’에 “그가 체포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말씀 안에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그 삶은 하나님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끌어내리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의 말들을 기억하십니까? 마귀는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봐라. 능력을 사용해서 천사들이 당신을 보호하게 하면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당신을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마귀의 말은 정말 합리적이며,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힘들게 고난을 받지 않으셔도 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마귀의 유혹이 오늘 우리의 생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와 고난가운데서 ‘하나님!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여기서 ‘시험하지 말라’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판단하지 말라’라는 뜻입니다. 너의 기준으로, 너의 한계로, 너의 경험으로, 하나님을 한정 짖고, 껴 맞추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 중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성경은 ‘그들 가운데서’, ‘그 백성들 가운데서’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 세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모든 세대 가운데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평가하며 하나님을 끌어내리는 일들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때까지 계속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사탄은 “너희가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라고 미혹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끝없이 자신의 생각과 한계로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기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늘 깨어서 ‘하나님 앞에 내가 올바로 서 있는가?, 하나님을 내 기준과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정말 믿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3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당하시는 그 이유에 대해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나의 삶에서 나의 기준과 시선과 관점과 한계는 어디에 맞춰져 있습니까? “내가 보기에…이건 안 돼, 못해” 그것이 지금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러면서 ‘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폭력도, 거짓도 없으신 분이셨지만, 사람들은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 죄인이 죽으면, 그들을 골짜기 한 곳에 그냥 묻어버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이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악인들과 똑같이 취급했으며,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인해 그런 완전한 실패하고 끝난 것처럼 보여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무덤에 던져지지 않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되셨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리마데 요셉’이 준비한 무덤에 들어가게 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자’라는 뜻은 ‘돈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자, 영광스러운 자, 존귀한 자’라는 뜻입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실패했다, 끝났다’라고 생각한 그 순간, 실상은 ‘고귀하고, 존귀한, 완전한 영광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그를 상하게 하고자 하셨다. 주님께서 그를 병들게 하셨다. 그가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여기면, 그는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뜻을 그가 이루어 드릴 것이다.” 여기서 ‘자손’이라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대속의 은혜로 이제 인간과 세상의 계명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여기서 ‘고난을 당하다’라는 단어를 보면 이 단어의 또 다른 뜻이 ‘해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그 구원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12절 하반절’에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라는 말씀처럼,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세상의 관점과 인간의 경험과 지식과 한계에서 나온 사람의 계명이 아니라 죽음조차도 이기신 메시아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 삶과 가정의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며 내 경험과 내 지식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의 주님의 은혜를 붙잡고 이 모든 상황을 바꿔나가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잡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부터 지켜주소서. 유스와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