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신년특새 4 호4:1-3 우리가 모르는 3가지를 위해
2025.01.10 14:10
예수인교회
RETURN 신년특새 4 호4:1-3 우리가 모르는 3가지를 위해 찬 288/통204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요11:49을 보면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는 대제사장 가야바가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한사람이 대신 죽어서 안정감을 만들 수 있다는 예언의 말씀을 잘못 해석 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가장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이스라엘의 지혜자들이 “가장 미련한 행동”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안다고 배우자, 자녀도 사실 잘 모릅니다. 왜 한국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겪는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안정을 찿지 못하는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척 합니다. 오늘 우리가 모르는 3가지를 통해 더 깊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첫째 우리가 모르는 것은 “우리에게 진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There is no truth for us
호 4:1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호세아서의 가장 핵심주제는 “이 백성이 나를 모르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쉐마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 망하는 자녀가 부모님께 자주하는 말이 있습니다. “알았다고요. 알았어요.” 이게 진짜 알았다는 걸까요? 듣기 싫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하는 이스라엘에게 “제발 말좀 들어라”라고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때 안다고 생각하는 말씀이 마치 잔소리처럼 반복되면 잘 안듣게 되죠? 그때 그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들어야 하는건가요? 이어지는 1절 후반에 “이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3가지를 반복해서 “없다, 없다,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체 하는 이스라엘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진실이나 사랑 그리고 지식은 전부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아는척 착각하는 이스라엘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번째로 등장하는 “진실(에메트)”이란 단어입니다. 이것은 “거짓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 어떤 힘이 있을까요? 적어도 그 사람의 말은 100% 신뢰 할 수 있는 말의 권세가 나타납니다.
철학자 칸트는 정직한 사람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강도를 만나 모든걸 빼았기게 됬습니다. 강도가 물었습니다. “이게 다냐? 네 전부입니다. 그럼가라” 했는데 도망치다 보니 바지 속에 금덩어리를 발견 했습니다. 이때 칸트는 갈등하다가 다시 강도에게 돌아가 그 금덩이를 주며 “내가 아까 미처 몰랐던 금덩이가 있는 걸 발견했소 이것도 가져 가시오” 그 순간 강도가 찔끔하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내가 잘못했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진실의 힘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국민이 정치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진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100%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이 진실하셔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진실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을때 마음이 움직이며 내 영혼의 진실성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우리가 모르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We have no Love
호 4:1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여기서 두번째 단어가 나오는데 바로 “사랑(헤세드)”입니다. 이것은 “오래 참는 희생의 사랑”(steadfast love)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때 이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우리의 사랑은 사랑만 남고 희생을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만하고 실제로 희생은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보여준 장면이 눅10장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사장 레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이 오히려 희생적 사랑에 인색한 것을 보여줍니다.
영국의 미들랜드지역의 무덤가에 두개의 무덤이 있고 그 중심에 오른손이 없는 여인의 동상이 매우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유인 즉 십자군 전쟁때 이스람 회교도들이 성지를 점령하고 있을때 자신의 사랑하는 애인이 포로로 잡혀 있어서 목숨을 걸고 이슬람에 와서 풀어 달라고 했는데 당시 정복자 살라딘은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너의 오른손을 잘라주면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서슴없이 오른손을 잘라 보내줬고 그 병사는 풀려나 죽는날까지 함께 했다는 “사랑의 무덤가”였습니다. 진실한 사랑에는 반드시 희생이 들어갑니다. 가정에 사랑이 넘친다면 누군가 그곳에 희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누군가 희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 섬김이들의 희생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혹시 내주변은 왜그럴까? 라고 생각된다면 그곳에 희생을 더해 보십시오. 거기에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드러나게 될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모르는 것은 “우리에게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We have no knowledge
호 4:1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여기서 세번째 단어인 “안다(야다)”가 나옵니다. 이것은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서로 오랫동안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앎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앎은 둘만이 아는 비밀같은 관계로 가령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친구관계, 연인관계에서 자주 쓰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런 개인적인 깊은 친밀함의 경험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경험을 갖고 있나요? 이런 비밀스런 기억을 우린 간증이라고 말합니다. 간증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많이 알게 될까요? 그것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보면서 일어나는 체험과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를까요? 지식적으로 배우기만 하고 실제 몸으로 순종하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율법은 많이 알아도 율법이 의미하는 희생과 사랑과 섬김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으로 겉은 번지르하는데 속은 텅 비었다고 한 것입니다.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의 체험이 함께 가야 합니다. 17세기 최고의 철학자이며 최고의 수학자였던 파스칼은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답답해서 더 깊이 알고자 간절히 원했습니다. 1654년 11월 23일 그는 평생 잊지못하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그의 일기 팡세에서 이날을 “불에 휩싸인 은총의 밤”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나는 생각한다”의 인식론자에서 “나는 믿는다”의 신앙론자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만 하는 사람에서 직접 체험하는 비밀스런 관계가 되야 합니다. 바라기는 신년에 이런 깊은 앎이 우리안에 일어나길 축언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