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21. 사 52: 1-12,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2025.01.03 09:1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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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52: 1-12,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찬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오늘 말씀은 ‘이사야 51장’과 연결이 되는 말씀으로, 51장의 말씀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메시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했다면 52장 말씀은 ‘그 구원의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하나님의 백성의 행함’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2장 1절, 2절’을 보면, 6개의 동사, 즉 “깨어라, 힘을 내라, 옷을 입어라, 먼저를 털라, 일어나 보좌에 앉아라, 목에서 사슬을 풀어라”라는 동사가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 ‘행동과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 시온아, 깨어라, 깨어라! 힘을 내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아,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 이제 다시는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너에게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깨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깨어나라’는 뜻은 말 그대로 ‘잠에서 깨라’는 뜻으로, ‘삶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고, 내 노력으로 인정받고자했지만 결국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해 절망의 삶에서 잠들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깨어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붙들고,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힘을 내라’는 단어를 보면 그 주체가 ‘우리의 힘’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힘의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의미합니다. 즉 그동안 내가 의지했던 세상의 힘, 그 바벨론의 힘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서 다시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아,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 여기서 ‘거룩한 성’이란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8번 나옵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성’이란 단어는 항상 하나님의 사명과 연결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본문에서 ‘거룩하다’는 뜻은 ‘구별되다’는 뜻인데, 이 의미는 ‘너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위해 구별된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아름다운 옷’이란 단어 역시 ‘거룩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거룩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구별된 백성,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아, 먼지를 털고 일어나서 보좌에 앉아라. 포로된 딸 시온아, 너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 내어라.” 여기서 ‘먼지’라는 의미는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죄에서, 세상의 죄악을 털어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의 보좌의 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목의 사슬’이란 ‘노예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노예로 살면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내 삶과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패배 의식을 끊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절부터 5절’ 말씀에 주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던 것과 같이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나의 백성이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반드시 나의 백성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말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본문을 개역개정 성경을 보면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내가 여기 있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보통 종이 주인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갈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6장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실 때, 이사야가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해 “내가 여기 있느니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 바로 오늘 본문 6절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깨어, 힘을 내고, 거룩한 옷을 입고, 죄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보좌의 자리에 앉고, 부정과 패배의식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붙잡는다면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조차도 순종하시겠다는 놀라운 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7절, 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의 소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또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구원의 소식, 참된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이사야’의 말씀을 가지고 ‘로마서 10장 13절부터 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 구원의 약속이 이제는 이스라엘을 넘어 온 열방에 퍼지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사명이요,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주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무엇을 외칩니까? 바로 ‘7절’에 “너희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삶,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그 믿음의 선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선포될 때, 본문 ‘12절’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너희 앞에 가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너희 뒤를 지켜 주시니” 바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또 뒤에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2025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문제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되고, 우리의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뒤에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제목: 2025년 나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 가정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바라보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삶으로 실천하여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통치하심을 반드시 경험하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 선교지): 주일 신년 연합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필요와 성령충만을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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