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17. 사 49: 8-15,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

2024.12.25 11:3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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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9: 8-15,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 찬 122장(참 반가운 성도여)

지금까지 살펴본 ‘이사야 48장’까지의 말씀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과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우신 고레스를 통한 메시아의 이스라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9장’부터는 이스라엘을 비롯한 열방을 향한 그리스도 메시아의 구원의 역사를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메시아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행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메시아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를 구원해야 할 때가 되면,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겠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날에는, 내가 그 간구를 듣고 너희를 돕겠다. 내가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겠으며, 너를 시켜서 뭇 백성과 언약을 맺겠다. 너희가 살던 땅이 황무해졌지마는, 내가 너희를 다시 너희 땅에 정착시키겠다.” 여기서 ‘구원’이란 뜻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뜻에는 ‘해방하다, 자유케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삶, 삶의 문제 가운데서 구원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는 영과 육 모두의 전인적인 구원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메시아 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본문 ‘10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으며, 무더위나 햇볕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기 때문이며, 샘이 솟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가운데서 주님을 그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 주님은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만들고, 내 백성이 자유스럽게 여행할 큰길을 닦겠다.” 우리의 구원자시오,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고난을 당하며, 그 고통 속에서 이렇게 한탄을 합니다.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이들은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무너져 황폐화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전쟁으로 죽고, 살아남은 사람도 포로로 끌려와 고통을 당하는 이 상황에서 ‘과연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는 한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삶의 고통 속에서, 문제 가운데 ‘하나님은 나를 잊으신 것 같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면 내 가정이나 직장이나 건강의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은 왜 아무 것도 해주시지 않는 것일까?’, ‘과연 하나님의 기적은 내게 일어나는가?’

물론 성경에서 나타나고, 또 주변의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간증을 들을 때는 ‘아멘’ 하지만 내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능력이 나타난다는 믿음은 확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은 믿지만, 그 기적과 능력이 내게 일어난다는 것은 믿고는 싶지만,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불신앙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능력을 행하시지만, 우리 안에는 그것이 나의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없는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고 그 기도 가운데 간절함은 있지만,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아,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다’고 한탄합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내 삶에 능력과 기적을 행하신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급할 때, 어려울 때만 필요하신 분이지, 대부분의 나의 삶에서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 이와 같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설사 그 엄마가 아이를 잊는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으신 적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 손바닥에 세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세긴다’는 뜻은 결코 지워지지 않게 조각칼로 세겼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손바닥에 세기셨습니까? 매 순간 기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손의 못자국이 나의 이름이었구나! 나의 이름이 그 손에 새겨져, 내가 그 대속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고, 그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나!’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였습니다. 그 못자국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중요한 것은 ‘이제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것인지, 안 믿을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갔을 때, ‘창세기 39장 4절’을 보면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들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눈에 들었다’는 뜻은 ‘귀하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의 상황과 현실은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어 팔려간 비참한 현실에서 그 주인이 그를 귀하게, 존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기 39장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바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절망의 상황, 그 비참한 삶의 현실 가운데서도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 가운데, 가정과 자녀의 어려움 가운데, 건강의 문제 가운데, 그 모든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지금 내가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 제목: 내 삶과 가정의 모든 상황 속에서 ‘너를 잊지 않겠다’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살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건강과 가정과 자녀들을 반드시 다시 일으키시는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부터 지켜주소서. 겨울 수련회를 통해 유스,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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