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15. 사 48: 14-22,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2024.12.20 08:5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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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8: 14-22,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찬 546장(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이사야 48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야곱의 집안아, 이스라엘이라 일컬음을 받은 유다의 자손아”라고 시작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실 때 사용하시는 용어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시는 것입니다. 비록 너희가 지금 고난 가운데, 고통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너희는 변함없이 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살펴본 ‘10절’ 말씀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야곱아”라고 부르시면서, ‘이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이 모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4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함께 모여서 들어 보아라” 이 말씀은 ‘12절’의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는 말씀과 같은 단어입니다. 또 ‘16절’에도 “너희는 나에게 가까이 와서, 말을 들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듣다’라는 단어는 ‘경청하다, 기억하다’라는 뜻과 함께 ‘순종하다’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듣고, 그 약속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내 형편과 상황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선택하셔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15절 하반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 길을 형통케 하겠다” 여기서 ‘형통하다’는 뜻은 ‘번영하다, 발전하다’라는 뜻으로, 이 ‘형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축복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형통의 삶’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임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지금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보디발’의 집의 노예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루아침에 노예로 팔려간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또 다시 억울함을 당해 감옥에 갇혀 3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을 합치면 10년이 넘는 시간을 고난의 시간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창세기 39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는데, 그는 여전히 노예였고, 여전히 감옥에 있었습니다.

이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형통의 기준은 상황과 환경에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형통의 기준은 하나님과 함께 있느냐,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최고의 성공한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그 집안의 살림을 맡으면서 경영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또 왕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곳에 있는 많은 고위 관리들을 만나면서 국제 정세와 통치에 대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아무 문제없이, 노예나 감옥의 시간이 없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면, 그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요셉’이 겪었던 노예와 감옥의 삶은 고통의 시간, 고난의 시간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너의 속량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주, 네 하나님이다. 네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며, 네가 마땅히 걸아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하나님이다’하셨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유익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8절’에 이렇게 또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였어도, 네 평화가 강같이 흐르고, 네 공의가 바다의 파도같이 넘쳤을 것이다.” 여기서 ‘귀를 기울이다’는 단어도 앞에서 살펴본 ‘듣다’라는 단어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 약속을 붙들기만 했어도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강같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부터 ‘21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이 결국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본문 ‘2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성경에서 ‘악인’이란 뜻은 단순히 ‘죄를 범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형편과 상황을 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며 사는 것은 미련한 삶, 어리석은 삶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즉 하나님의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화’라는 단어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샬롬’이라는 단어인데, 이 뜻은 ‘평화, 번영, 행복, 건강, 안전’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어원은 ‘울타리’라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유목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지키기 위해 밤이 되면 울타리를 칩니다. 그러면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은 아무리 그 울타리 밖의 이리들이 나타나고 사나운 맹수가 나타나도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은 보호를 받고, 평안을 얻고, 안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샬롬’,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상황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어려움이 몰려와도 하나님의 울타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며 살아가는 성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평화, 안식, 샬롬의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나의 삶 속에서 상황과 형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믿음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삶과 가정에 주시는 샬롬의 형통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 선교지): 주일 성탄 연합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필요와 성령충만을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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