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13. 사 47: 1-15, 처녀 딸, 아무개야!
2024.12.18 12:01
예수인교회
사 47: 1-15, 처녀 딸, 아무개야! 찬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이사야 47장’은 ‘46장’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46장’에서 ‘바벨론’의 신들인 ‘벨’은 떨어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다라고 말씀합니다. ‘벨’과 ‘느보’는 당시 ‘바벨론’의 승리를 상징인 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순간에 무너짐으로써 그 허망한 신들을 섬기던 ‘바벨론’의 멸망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이사야 47장’에서는 그렇다면 그 ‘바벨론’이 “왜 멸망을 할 수 밖에 없는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처녀 딸 바빌론아, 내려와서 티끌에 앉아라. 딸 바빌로니아야, 보좌를 잃었으니, 땅에 주저앉아라. 너의 몸매가 유연하고 맵시가 있다고들 하였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처녀 딸’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용하셨던 표현입니다. ‘처녀 딸’이란 의미는 당시 ‘가장 순결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운 여인, 고귀한 집안의 여인’을 상징합니다. 쉽게 말해, 귀족 집안의 딸, 왕의 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왕의 딸은 그 자체는 연약하고,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왕이기 때문에, 귀족이기 때문에 고귀한 존재가 되고, 존귀한 존재가 되고, 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처녀 딸’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자체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부족한 존재이지만 그들의 하나님 때문에 이스라엘이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체가 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붙들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강하고자 했습니다. 주변의 나라들이 강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강해지고 싶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왕의 딸이 왕이 없으면 아무 존재가 아닌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이방의 핍박과 고난을 받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는 자신이 강해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성공은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내 능력,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우리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약한 그 때가 하나님의 강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믿음의 약함으로 심고 삶의 강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환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강할 필요가 없습니다. 힘이 강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처녀 딸, 바벨론아’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바벨론’도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세계의 정복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신, 또 자신들의 능력과 힘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딸, 바벨론에게 “내려와서 티끌에 앉아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티끌’은 ‘먼지, 재’를 뜻하는 단어인데, ‘티끌에 앉으라’는 뜻은 ‘죄인의 흙먼지와 재로 쌓인 바닥에 앉아 신문을 받는 것처럼 이제는 심판의 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는 ‘바벨론 족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제는 그 고귀한 보좌를 잃어버리고 ‘2절’에 맷돌을 잡고 가루를 빻아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맷돌을 잡고 가루를 빻는 일은 여종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이 하는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또 계속해서 ‘2, 3절’에 ‘얼굴을 가린 너울을 벗으라’는 것은 당신 여인들에게 수치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치마를 걷어 올려 다리를 드러내라는 것’ 또한 모욕적인 수치와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바벨론이 이같이 수치와 모욕을 당하며, ‘5절’의 말씀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속량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주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바벨론의 수치와 멸망을 말씀하다가 갑자기 “우리의 속량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주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벨론이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면서 우리의 신 ‘벨’과 ‘느보’가 참 신이며, 우리의 신이 너희를 구원하는 것이니 오히려 너희가 우리의 신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 내가 나의 백성에게 진노하여, 나의 소유, 나의 백성이 곤욕을 치르게 하고, 그들을 네 손에 넘겼다. 그런데 네가 나의 백성을 가엾게 여기지 아니하고, 노인에게도 무거운 멍에를 메웠다.” 바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 넘기신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회복케 하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잘못했을 때 회초리를 들었는데, 그 자식의 잘못을 꾸짖기 위해 사용된 회초리가 자신이 어머니라고 하는 격으로 ‘바벨론’은 자신들이 ‘구원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세계에서 번성했던 제국 중에 ‘바벨론’은 가장 빨리 제국으로 성장했다가, 가장 빨리 멸망한 나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어처구니없이 당시 작은 나라였던 ‘페르시아’에게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세상적인 전쟁의 기준인 군사력이나 나라 전체의 힘으로 보면 ‘페르시아’는 ‘바벨론’의 적수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 대제국 ‘바벨론’을 멸망시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이유와 원인을 살펴보아도 세상적인 기준과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 대제국도 한 순간에 무너지고 살아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강함이나 지식과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바벨론의 멸망의 역사를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부터 말씀을 보면, ‘바벨론’은 마치 자신이 모든 나라의 여왕처럼 군림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8절’에 바벨론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외칩니다.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나는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식을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10절’에 “너의 마음속으로 ‘나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고 생각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9절’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자식을 잃고,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을 한 날에 갑자기 닥쳐 올 것이다. 너의 주술이 아무리 능하고 너의 마술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하여도, 이 일이 너에게 반드시 닥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11절, 12절’에 너에게 닥칠 그 멸망을 그 동안 너희가 의지했던 이방 신의 주술과 마술로 버텨보라고, 그들이 너희 도움이 될지 모르니 그 헛된 우상에 매달려 보라고 조롱하십니다. 또 ‘13절’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주술사들, 점치는 자들에게 구원해 달라고 매달려 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14절’에 하나님께서는 “보아라, 그들은 검불같이 되어서, 불에 타고 말 것이다…그 불은 너무나도 뜨거워서, 그들 스스로를 그 불에서 구하여 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15절’에 결론적으로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는 나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나타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이 내 삶속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처녀 딸, 시온아’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우리의 삶의 연약한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강함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으로 드러나고 그 약함을 통해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내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 부터 지켜주소서.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게 세워 주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