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4. 사 41: 21-29,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보아라!

2024.11.22 08:16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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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1: 21-29,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보아라! 찬 322장(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본문 말씀은 ‘41장 1절부터 20절’ 말씀과 대조가 되는 말씀으로 앞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도움이 되시고, 그 고난 가운데서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하셨다면, 본문 말씀은 그 반대에 있는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고 따랐던 우상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작인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신다. “민족의 신들아, 소송을 제기하여 보아라.”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여 보아라.” 야곱의 왕께서 말씀하신다.” 여기서 ‘소송’이란 단어는 우리 성경이 번역을 잘 하였는데, ‘법률적 단어’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판사와 고소인의 입장에서 우상들에게 ‘너희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존재하지 않는 우상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우상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따르던 우상들의 거짓됨을 말씀하시는, 한 마디로 “우상은 헛된 것”이며, 결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22절, 23절’입니다. “이리 와서,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보아라. 지난날에 있었던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말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그것들을 살펴 그 결과를 알아보겠다. 아니면, 앞으로 올 일들을 우리에게 말하여 보아라. 장차 올 일들을 말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너희들이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을 내리든 화를 내리든, 좀 하여 보아라. 그러면 우리가 모두 놀라며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장차 일어날 일’, ‘지난날의 일’이란 의미는 단순히 미래와 과거의 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과거부터 미래의 삶을 책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따르는 자들의 운명을 바꾸고 책임질 능력이 있느냐? 그들에게 복을 주고 화를 내릴 능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5절’에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북쪽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오게 하였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 사람을 해 뜨는 곳에서 오게 하였다. 그가 와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아 이기듯, 통치자들을 진흙처럼 밟을 것이다.” 이 말씀은 ‘페르시아’의 ‘바사 왕 고레스’가 그렇게 강력했던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그들의 미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사 왕 고레스’를 ‘나의 이름을 부른 그 사람’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사실 ‘바사 왕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의 왕이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그를 ‘나의 이름을 부른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여기서 ‘부른다’는 의미는 ‘세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나의 이름을 세운 사람’이란 뜻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서 그를 움직이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의 왕조차도 움직이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에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힘이 없어서 해방할 수 없다, 전쟁을 통해 싸워서 자유와 해방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그 힘이 없어 낙심하고, 절망 가운데 살아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방법과 능력으로 그들을 자유케 하셨고 해방과 회복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참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을 결코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점을 보러 가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해도 거짓된 우상과 귀신은 우리의 삶을 결코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2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이 모든 우상은 쓸모가 없으며, 그것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일 뿐이요, 헛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허무하고, 헛된 것을 섬기기 때문에, 그 삶들도 허무하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고, 오히려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하고, 있는 것조차 없었질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을 보면 이 우상을 따르고 선택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혐오하신다’고 말씀합니다. ‘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참으로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가 하는 일도 헛것이니, 너희를 섬겨 예배하는 자도 혐오스러울 뿐이다.” 여기서 ‘혐오스럽다’는 단어의 뜻에는 ‘속임’, ‘거짓’이란 의미와 함께 ‘두 마음을 가진 것’이란 뜻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 삶에는 우상을 따른 삶, 즉 두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은 혐오스럽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고 선택합니까? ‘출애굽기 20장 4절’을 보면 우상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바로 우상을 만들고 선택하는 것은 사람들이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해, 자기중심적 삶을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재의 삶, 현재의 어려움, 문제만을 바라보며, 그 문제 앞에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해 두려워 살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고, 그들 앞에 절하고 섬기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사람입니까? 현재를 살아가지만 미래의 대한 확실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내 앞에 닥친 현실만을 바라보며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치면 불안하고, 또 불안할수록 우상에게 달려가 매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천국에 대한 미래가 결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미래이며 지금을 살아가는 삶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는 어디에 갈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 먹고, 잘 살고, 자녀들이 축복받고, 문제 해결되고, 건강이 치유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목적은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녀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더 많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더 많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한 것입니다. 단순히 잘 살기 위해 축복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축복으로 더 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자녀들이 잘되어야 하고, 건강도 치유되고, 문제도 해결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에서 그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아버지의 뜻이 이 땅 가운데서도 이루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믿음의 백성은 어떤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둔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그 문제와 고난을 뚫고 이겨낼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고백하면서 아직 내 삶에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기며 살아가는 우상이 있다면 오늘 이 기도 가운데 온전히 내려놓게 하소서. 내 삶과 가정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시고, 나와 우리 가정의 삶을 책임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 선교지): 주일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필요와 성령충만을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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