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AH 2. 사 40: 12-31,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2024.11.20 08:5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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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0: 12-31,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찬 93장(예수는 나의 힘이요)

‘이사야 40장’부터는 ‘메시아’ 곧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고, 스랍들이 그 얼굴과 발을 가리며 ‘이사야’는 그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습니다. 비록 지금 ‘이사야’와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비참한 현실에 처해 있었지만, 그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고 계시고, 문제를 초월하고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0장’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포로 생활을 끝내게 하시고, 다시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은혜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말씀이 선포되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선지자의 외침에도, 그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살펴 볼 때는 조금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고, 저 강대국 바벨론은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2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그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자신들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한탄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은혜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당장 나의 현실을 바라볼 때는 달라지는 것이 없고, 오히려 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은 나의 형편을 외면하시는 것 같고, 나의 삶을 돌보시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문제 앞에 하나님을 의심하고, 작게 여기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12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누가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려 보았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았느냐? 누가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고,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고,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았느냐?” 세상 그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떠서 그 양을 세울 수 있고, 손 한 뼘 한 뼘 펴서 하늘의 크기를 잴 수 있고, 온 땅의 티끌과 산들과 언덕들을 저울로 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14절’을 보면 그 하나님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으시고, 조언자도 필요치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그 모든 것의 답을 알고 계시고, 모든 문제의 해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저울로 보면 ‘모든 나라들은 고작 두레박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이나 티끌 같을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고난 가운데 괴롭히고 있는 그 강대한 나라들, 그들을 포로로 끌고 와 고난을 겪게 하는 그 ‘바벨론’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봤을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고, 저울의 붙어 있는 작은 먼지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를 영적으로 하나님의 저울 앞에 달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해결 할 수 없어 보이고, 풀릴 것 같아 보이지 않던 그 문제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 점 먼지와도 같은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해결하지 못하실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8절부터 26절’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그 어떤 우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21절’에 그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땅의 기초를 만드셨고,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24절’에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 앞에 허수아비와 같고, 그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 이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이 많으신 ‘전능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선포합니다. 본문에서 ‘능력이 많다’는 ‘전능하다’는 뜻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다’라는 뜻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바로 ‘전능’이란 뜻은 ‘인간적 힘으로 할 수 없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그러면서 ‘30절’에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절’ 그들에게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새 힘을 주시고, 뛰어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치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새 힘’이란 단어를 보면 여기서 ‘새’라는 뜻은 ‘관통하다, 뚫고 나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힘’이란 뜻은 ‘쳐부수다’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새 힘’을 주시는데, 그 힘은 우리의 문제를 쳐부수고, 뚫고 돌파해 나가게 하시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는 이런 새 힘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것”입니다. ’31절’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개역개정 성경은 이 ‘소망’을 ‘앙망하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앙망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Qavah)’라고 하는데, 이 어원은 “여러 가지 물건을 비틀어서 하나로 묶을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무나 간절하게 사모하고 기다리고 소망하다 보니 마음이 뒤틀리는 것 같은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바로 고통의 순간, 절망의 순간 사방이 막혀 있는 순간에도 나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 온전히 나의 시선을 두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망했고, 젊은이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로, 첩으로, 몸종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들은 지나가는데, 벌써 한 세대가 지나고, 또 한 세대 오건만 고난의 시간은 끝이 없었습니다. 1년, 2년 10년, 20년, 기다림의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깊은 패배의식, 좌절과 절망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이제는 끝났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낙담하고 더 이상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 속에서,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앙망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 제목: 우리의 모든 문제와 상황 속에서 측량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앙망하는 삶을 통해 그 문제를 반드시 이기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 부터 지켜주소서.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게 세워 주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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