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34. 삼하 21: 1-14, 그 후에야 기도를 들어주셨다.

2024.11.06 09:2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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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1: 1-14, 그 후에야 기도를 들어주셨다. 찬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사무엘하 21장’부터는 ‘사무엘하’의 부록과 같이 첨부된 말씀으로 사무엘하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을 에필로그와 같은 사건들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들은 시간적으로도 연결이 되는 내용들이 아닙니다. 특히 본문 ‘21장’은 ‘다윗’이 왕이 된 초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다윗’ 이전의 왕이었던 ‘사울’의 범죄와 그 죄로부터 어떻게 회복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 ‘24장’ 역시 ‘다윗’의 범죄와 회복에 대한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죄는 반드시 용서 받아야 하고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로막기 때문에, 그로 인해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없고,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마저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죄로부터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윗 시대에 세 해 동안이나 흉년이 들었다. 다윗이 주님 앞에 나아가서 그 곡절을 물으니,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다.” ‘이스라엘’은 땅 자체가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주시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광야에 불과한 땅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에 그 척박한 광야의 땅이 축복의 가나안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려야 합니다. 아무리 척박하고 힘듦 광야같은 삶도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리면 가나안의 축복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나라 전체적으로 엄청난 위기를 겪게 된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이유를 주님께 나아가 묻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단어는 ‘나아가서’라는 단어인데, 이 뜻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나아갔다’는 뜻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문제 가운데 ‘기도의 자리’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사울과 그 집안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여호수아 9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가나안 땅을 점령하던 때의 이야기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민족과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땅의 모든 것을 멸절시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그 과정 가운데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 족속’ 중의 한 족속이면서도,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마치 멀리에서 온 이방 사람들처럼 꾸미고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화친을 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이 과정에서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실수로 그들의 말만 듣고 하나님 앞에 그들을 살려 주기로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들이 ‘가나안 족속’인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하나님 앞에 맹세한 그 약속은 바뀌지 않았고, 그 약속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막에서 ‘허드렛일’을 맡아 섬기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렇게 수 백 년을 그 약속으로 인해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약자로 함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때는 여전히 그들은 이방 백성이요,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눈에 보기 싫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울’이 왕에 되자, 그는 집권 초기에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을 깨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2절 하반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다 죽이려고 하였다” 여기서 “편파적으로”라는 단어를 ‘개역개정 성경’은 “열심으로”로 번역하였는데, 이 단어의 뜻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무엇인가의 이익을 얻기 위해 내는 열심’을 의미합니다. 즉 ‘사울’과 그 집안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왕권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는 열심,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열심은 오히려 더 큰 죄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열심’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묻습니다. “다윗이 기브온 사람에게 물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내가 무엇으로 보상을 하여야, 주님의 소유인 이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시겠소” 죄는 ‘사울’이 저질렀는데, 그 속죄의 문제가 ‘다윗’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죄의 심각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다윗’은 ‘사울’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기브온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4절부터 6절’ 말씀을 보면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사울’의 집안에서 남자 7명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을 ‘사울’이 살던 ‘기브아’로 끌고 가 나무에 달아 죽이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7’이란 의미는 완전 숫자로, 그 집안 전체를 상징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그래서 ‘7절부터 9절’을 보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제외하고 ‘사울’의 집안에서 7명의 남자를 잡아다가 ‘기브온 사람들’에 넘겨주어 그들을 죽게 만듭니다.

그런데 과연 이 ‘다윗’의 행동이 옳은 일이었을까를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명기 2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죄를 자녀들에게 묻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울’의 죄로 인해 그 자녀들이, 후손들이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들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죽이도록 내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기브온 사람들’이 그 7명을 넘겨받아 산의 나무에 목 매달에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를 ‘9절 하반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처형을 받은 것은 곡식을 거두기 시작할 무렵, 곧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였다” 이스라엘에서 보리를 거두는 시기는 ‘3월 말’이나 ‘4월’입니다. 그런데 ‘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로 만든 천을 가져다가 바윗돌 위에 쳐 놓고, 그 밑에 앉아서,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로부터 하늘에서 그 주검 위로 가을 비가 쏟아질 때까지, 낮에는 공중의 새가 그 주검 위에 내려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이 부분을 한 절 읽고 지나가지만, 이 장면이 상상이 가십니까? 정말 기가 막히고,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자신의 자식이 죽자 그 장소의 바위돌 위에 베를 깔고, 그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들과 7명의 나무에 매달려 있는 그 시체들을 낮에는 새들이 날아와 뜯어먹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와서 뜯어 먹는 것을 막기 위해, 밤을 새워 쫓고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이 기간이 얼마나 됐는지 아십니까? ‘10절’에 보면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로부터 하늘에서 그 주검 위로 가을 비가 쏟아질 때까지”라고 말씀합니다. ‘보리 거둘 때’를 ‘4월’이라고 하면, ‘가을비가 내릴 때’는 ‘11월’을 의미합니다. 무려 어머니 ‘리스바’는 ‘7달’ 동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것도 가슴 아픈데,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하고, 또 나무에 달려 죽으면 저주받은 것으로 생각해서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그 가슴이 찢어지도록 힘든 고통 속에 있는 그 처절한 어머니의 모습이 여러분 상상이 가십니까?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셨던 것일까? 이토록 죄가 무섭고, 악한 것인 것은 알겠지만, 하나님은 이 어머니의 통곡은 외면하시는 것일까?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이 어머니의 아픔과 통곡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11절’을 보면 이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집니다. 그러자 ‘다윗’ 또한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12절부터 14절’을 보면, 당시 ‘길르앗’에 있던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들의 뼈들도 함께 가져옵니다.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과 그 죽은 7명의 사람의 뼈를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함께 묻어 줍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죽은 자에 대한 가장 정중한 예의를 나타내는 행동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그 명예를 회복시키고, 신분을 회복시켜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에 대한 징계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징계 가운데서도 반드시 하나님의 인애, 사랑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본문을 통해 참 은혜를 받았던 말씀은 본문 ‘14절 마지막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이 지시한 모든 명령을 따라서 그대로 한 뒤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돌보아 주시기를 비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 시점은, ‘기브온’의 원수가 갚아졌을 때가 아닙니다. 그들의 원수가 갚아지고 ‘사울’의 죄값이 치루어졌을 때도,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언제 비가 내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로 이 어머니 ‘리스바’의 억울함, 눈물, 한탄 가운데 은혜가 흐를 때였습니다. 그녀의 슬픔 가운데 ‘다윗’을 통한 하나님의 긍휼이 함께 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단순히 죄에 대한 징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또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베풀어졌을 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요엘 2장 12, 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죄가 없는지, 내 삶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고 있는 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결코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그 죄의 삶에서 말씀에 응답하길 기다리십니다. 그 슬픔과 고통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길 기다리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시고, 그 십자가 사랑의 감격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 마음과 삶 속에 있는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하는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믿음과 삶의 결단이 있게 하소서.

어떤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와 함께 하심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내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부터 지켜주소서.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게 세워 주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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