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33  삼하19:41-20:26  영적 갈등의 원리

2024.11.05 09:32

예수인교회

조회 수168

WORSHIPER 33  삼하19:41-20:26    영적 갈등의 원리    254/186 내주의 보혈은

갈등이란? 칡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자라는 방향이 달라서 계속 부딪히면서 결국 얽히고 섥히는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단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둘다 스스로 설 수 없는 덩굴나무란 점입니다. 인간도 이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오히려 서로 갈등할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영적 예배자도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다윗의 정권이 다시 회복되려고 할때 리더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이걸 통해 영적 갈등의 시작과 솔루션을 찿아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갈등은 나의 욕심으로 시작됩니다.    19:40-44

   압살롬의 반역이 끝나자 이스라엘 전체는 다윗왕을 다시 모시기 위해서 의논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다족속이 나서서 먼저 다윗왕과 그 일행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전달됩니다. 이것이 갈등의 시작이 됩니다. 본문 40-41절을 보면, 이스라엘족속은 “왜 너희가 다윗을 빼돌렸는냐?” 책임을 추궁합니다.(41절) 그러자 42절에 유다사람들은 다윗이 유다족속이기에 당연하다고 반발합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면 두가지 아이러한 장면입니다. 하나는 “둘다 배신한자” 입니다. 다윗왕이 위험에 빠졌을때 둘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배신을 잘 하는 사람은 기회주의로 언제든지 또 다시 배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갈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의 주도권 싸움은 사사기 시대때 에브라임지파로 인해 시작되었는데 수백년이 지났어도 계속되는 걸 말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갈등의 중심에 결국 인간의 욕심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욕심을 리차드포스터는 권력(자기뜻대로 하려는 힘), 명예(자존심), 물질(다양한 욕심)로 표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욕심은 창세기 3장과 야고보서 1장에 말하듯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창3:6,약1:14) 문제는 마귀가 이런 욕심을 유혹할때 항상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다는 점입니다.(창3:1) 예를 들어, 직장에서 누군가와 갈등하며 싸울때 자신의 이익은 감추고 직장을 위한다는 거짓 명분으로 싸웁니다. 가정의 부부가 싸울때도 서로가 가정을 위하는 것처럼 갈등합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자신의 욕심 때문이면서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싸운다는 표현을 합니다. 정치인들을 보면 가장 심합니다. 서로 나라를 위한다는 거짓명분으로 갈등을 만듭니다. 우리는 갈등이 발생할때 중심을 정확히 볼수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안에 권력(힘)과 명예(자존심)와 물질(욕심)로 자극하는것입니다. 이것을 명분으로 덮을때 우리는 스스로 착각을 해서 죄를 제대로 찿아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거짓된 명분과 싸우지 말고 내안에 욕심과 싸우는 십자가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가정과 일터나 목장에 그리고 내주변에 갈등이 있다면 명분을 버리고 내속에 욕심과 싸우는 새벽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갈등은 주변사람으로 커져갑니다.     20:1-13

   작은 갈등이 커지는 이유는 항상 이것을 이용하려는 주변 사람 때문입니다. 삼하20:1절을 보면 이런 갈등의 불씨를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만들려는 사람이 일어나는데 그가 바로 베냐민 사람 세바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선동하여 다윗과 유다 사람들을 향해 반란을 일으킵니다.(1-2절) 다윗은 왕으로서 4절에 이런 갈등을 미리 예상하고(6절) 일부러 이스라엘쪽 장군인 아마사를 전체 지휘관으로 세워 이 사건을 진압하게 맡깁니다. 지도자는 이렇게 주변으로 확산될때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5절에서 아마사가 욕심을 내어 기한을 넘겨버립니다.(5절) 다윗은 여기서 발빠르게 군대장관을 대신할 사람을 임시로 세우는데 유다 장군인 요압이 아닌 그의 동생 아비새를 세웁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싸웠던 요압보다는 그의 동생이 여론을 잠재우기 좋다는 다윗의 큰 생각에서 진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요압이 이것을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이 자꾸 베제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자기가 지휘관이 되고 싶어서 결국 아마사 장군을 암살해 버립니다. 정말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다윗의 모든 수고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세바와 아마사와 요압”의 공통점 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갈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쌓여 있던 불만과 욕심을 채우려했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욕심으로 발생한 갈등의 불씨를 주변사람들로 인해 집안까지 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일로 요압은 죽게 되고 이스라엘은 솔로몬때에 가서 남과 북으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갈등은 빨리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면 시간이 갈수록 주변사람으로 번져서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주변의 갈등을 보며 참여하거나 이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회복시키지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길 기도합시다.. 

 셋째 갈등은 “구별과 희생으로 회복됩니다.”   20:14-26

   14-15을 보면 요압장군은 세바와 그일행들이 숨어있는 아벨과 벳마아 지역을 포위하고 전멸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지역은 이스라엘에서도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였습니다.(18-19) 이곳의 한여인이 요압에게 나와 문제의 핵심을 듣고 세바의 목을 내어주고 사건을 의외로 쉽게 해결합니다.(22절) 이 여인이 아니었으면 요압은 아벨전체를 전멸시켜버렸을 것입니다. 정확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여 그것만 잘라낸 것입니다. 또한 다윗왕은 7년전 이스라엘을 화합시키려고 므비보셋의 아비새장군을 세우려할때도 요압은 자신의 욕심으로 암살했고(삼하3:27) 이번에도 아마사장군을 똑같은 이유로 암살했습니다. 다윗의 하나됨을 위한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요압을 징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다시 참고 요압에게 오히려 지휘관직을 주며(23절) 모든 갈등을 일단락 하게 됩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욕심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잘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여인처럼 문제의 핵심인 세바만 제거하면 됩니다. 옛날에 있던 일까지 들먹이며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부부싸움할때 신혼때 가져온 혼수부터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에 햇던 잘못까지 들먹여서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늘 희생 없는 화평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주님의 십자가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희생과 섬김으로 가정과 일터와 공동체의 갈등의 불씨를 제거하는 예수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제목: 주님 오늘도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것을 힘써 지킬수있도록 나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고 주님의 지혜와 희생과 섬김으로 가정과 일터와 영혼들을 잘 섬기게 하소서

중보제목: (화:목장/vip) 모든 목장모임에 영혼초청과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 목자와 환우들이 회복되게 하소서/ 모든 교회가 갈등을 넘어서 영혼을 구원하는 성도와 교회되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