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30 삼하18:19-33 하나님 아버지 마음으로 회복하다.
2024.10.30 08:04
예수인교회
WORSHIPER 30 삼하18:19-33 하나님 아버지 마음으로 회복하다. 찬446/통446 주 음성 외에는
다윗에게 반역하여 반란을 일으킨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요압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향한 반란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죄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선택하셨고 이번 전쟁을 승리로 마치게 해주셨습니다. 오늘의 내용은 이 승리의 소식을 다윗에게 전달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작성되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압살롬이 죽음으로 다윗이 승리했습니다.”라고 끝내도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너무도 상세하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본론>
첫째. 좋은 소식은 좋은 사람이 되어 전해야 합니다. (19-20절)
오늘 본문에는 두 명의 전령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요압에게 자신이 승리의 소식을 전하겠다고 자원합니다. 그러나 요압은 말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소식은 기쁜 소식이지만 내용이 왕이 기뻐할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히마아스는 굳이 전하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기쁜 소식이고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가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마음 중심이 불붙는 것 같다고 여겼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안 전하고는 못 견디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히마아스의 모습을 보고 다윗은 놀라운 이야기를 한 번 합니다.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VIP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작정하고, 기도하며 초대하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더 잘 전달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누구보다 더 세상적으로 살다가 갑자기 복된 소식을 전한다고 그 사람들이 갑자기 따라올까요? 아닙니다. 먼저는 우리의 삶을 보며, 우리의 태도를 보며 전해지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본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21절)
요압은 아히마아스의 요청을 거절하고는, 구스사람, 에티오피아 사람을 불러서 명령을 합니다. 그리고는 “네가 본 것을 전하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절을 하고는 다윗에게 달려갑니다. 지금 에티오피아 사람은 마지못해 가야하는 상황입니다. 요압장군이 명령을 하기에 어쩔 수없이 순종해서 가야합니다. 지금 우리들도 마치 에티오피아 사람들처럼 마지못해 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자고 하니까, 목사님이 시키니까, 왠지 하나님이 찔림을 주어서 어쩔 수 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보고 경험한 것을 전해라.”고만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사람이 사명을 잘 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보통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께도 이렇게 변명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해서요, 밭을 사두어서요, 일 좀 마치고 할게요.”합니다. 그러나 복된 소식은, 하나님의 기쁜 소식은 그 마음을 주실 때 순종하고 하는 것입니다.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말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입을 열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하여 본 것을 그대로 전하면’됩니다. 그것이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 교회 성도여러분 결론을 맺겠습니다.>
다윗은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이 승리를 했다는 것은 아들의 패배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4절에 “그 때에, 다윗은 두 성문 곧 안문과 바깥문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라고 말합니다. 이곳에서 다윗은 초조한 마음으로 전쟁터에서 기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전령이 도착했을 때 그의 질문은 압살롬의 안부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왕의 마음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본문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입니다. 탕진한 아들,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돌아온 탕자 이야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팀켈러는 탕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탕부”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탕부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허비하는 탕부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지금 탕부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역하고 죽어 마땅한 그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본문 말씀이 누구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 본문은 다윗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죽음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오늘 본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에서 끝이 나는 것입니다. 다윗 이야기에 완성되지 않은 사랑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된 이야기입니다.
오늘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다윗의 통곡을 들으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 수많은 자녀를 위해서, 이 땅에 수많은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시며 울고 계십니다.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우리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말씀기도: 우리가 먼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그 마음으로 전하게 하소서.
요일기도:(수:다음세대/젊은 지도자들): 교육부서, Youth, 청년부에 성령을 부어주소서, VIP 초청에 대해서 담대한 믿음과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