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28. 삼하 17: 1-23, 예배자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2024.10.25 09:23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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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7: 1-23, 예배 자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찬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오늘 본문은 ‘아히도벨’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아주 무서운 계책을 내놓고, 그대로 실행되면 오늘 밤 ‘다윗’의 운명이 끝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본문 ‘1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또 이와 같이 말하였다. “부디 내가 만 이천 명을 뽑아서 출동하여, 오늘 밤으로 당장 다윗을 뒤쫓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가 지쳐서 힘이 없을 때에, 내가 그를 덮쳐서 겁에 질리게 하면,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달아날 것입니다. 그 때에 내가 왕만을 쳐서 죽이면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내가 온 백성을 다시 임금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오듯이, 백성이 그렇게 임금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노리시는 목숨도 오직 한 사람의 목숨입니다. 나머지 백성은 안전할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아주 무서운 계획을 내는데 “다윗이 백성들을 끌고 함께 갔기 때문에 얼마 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지칠 대로 지친 ‘다윗’을 따라잡아야 한다. 자신이 12,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다윗’만 죽이게 되면, 많은 인명피해 없이 전쟁을 끝내고, 백성들도 압살롬에게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모든 참모들이 이 ‘아히도벨’의 기막힌 전략에 “옳게 여겼다”고 말씀합니다. 이 뜻은 단순히 옳게 여겼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찬성을 했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다윗’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기막힌 돌발 변수가 생기게 됩니다. 이 위기의 순간 하나님께서 놀랍게 그 일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5절, 6절’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아렉 사람 후새도 불러다가, 그가 하는 말도 들어 보자고 하였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오니, 압살롬은 그에게, 아히도벨이 한 말을 일러주고서, 그 말대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고, 또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다.” 갑자기 ‘압살롬’이 ‘후새’를 불러 그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압살롬’은 ‘아히도벨’이 계략을 내면 하나도 어기지 않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모든 쿠데타를 성공했습니다. 심지어 ‘6장 23절’을 보면,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무엇이든지 마치 하나님께 여쭈어서 받은 말씀과 꼭 같이 여겼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승승장구 하던 ‘압살롬’이 처음으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 ‘아히도벨’의 계략을 바로 실천하지 않고 ‘후새’를 부른 것입니다. ‘후새’는 ‘다윗’이 일부러 ‘압살롬’에게 투항하게 해서 심어놓은 첩자였습니다. 그래서 ‘후새’는 ‘압살롬’의 핵심 참모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압살롬’에게 간 것도 아니고, ‘압살롬’이 먼저 자신을 불러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악인이 아무리 지혜를 내고, 권모술수를 부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에 계셔서, 마치 유도에서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상대를 넘겨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계획과 모략으로 그들이 넘어지게 하시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후새’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잡고 ‘압살롬’에 앞에 나오게 되자,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획을 말해 주자 그 계획을 듣고 크게 놀라게 됩니다. ‘아히도벨’의 계획대로 시행되면 ‘다윗’은 이제 꼼짝없이 죽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8절부터 13절’을 계속 보면, ‘압살롬’ 앞에 선 ‘후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히도벨’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그리고 ‘후새’는 ‘압살롬’이 듣기 좋은 말, 그의 교만을 부추기는 터무니 없는 말로 ‘아히도벨’의 계획을 무산 시킵니다. ‘13절’을 보면 ‘후새’는 ‘압살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가 어떤 성읍으로 물러 나면, 온 이스라엘이 굵은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읍을 동여매어, 계곡 아래로 끌어내려서, 성이 서 있던 언덕에 돌멩이 하나도 찾아볼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읍 하나를 통째로 계곡 아래로 끌어내린다’는 말이 실현이 가능하겠습니까? 너무 터무니없고, 허황된 말입니다. 그런데 이 허황된 계획을 들은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획보다 ‘후새’의 계획을 더 좋게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결정적인 잘못된 선택이 그 동안 성공했던 ‘압살롬’은 망하게 되고, 그동안 절망가운데 있던 ‘다윗’은 다시 승리케 하는 반전의 역사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압살롬’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14절 하반절’에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압살롬이 재앙을 당하게 하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좌절시키셨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아히도벨’의 계략은 최고였습니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너무나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의 계획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기서 5장 12절, 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간교한 사람의 계획을 꺾으시어 그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신다.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을 제 꾀에 속게 하시고, 교활한 자들의 꾀를 금방 실패로 돌아가게 하시니,” 악한 자가 아무리 그 지혜와 계략을 가지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계획은 사람의 계획으로는 가장 뛰어난 계획이었습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으시면 아무리 좋은 계획도, 아무리 돈이 많고, 노력을 해도, 학벌이 좋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계획을 무효화 시켰지만, 언제 다시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획을 다시 시행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 ‘후새’는 급하게 ‘다윗’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독’ 제사장과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두 제사장의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이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지만 ‘18절’에 ‘압살롬’의 첩보원에게 발각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첩보원이 이 두 사람이 ‘다윗’에게 가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압살롬’에게 알리자, 이들은 ‘다윗’에게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바후림’이라는 마을로 들어가 어느 집 마당의 우물 속으로 숨습니다. 그러자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와 그 우물 입구에 덮고, 그 위에 찐 보리를 널어놓고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군사들이 그 집에 와서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찾자, 그 여인은 그들은 방금 강을 건너갔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 군사들은 그 여인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그 여인을 조금만 의심하고 집을 뒤졌으면,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발견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에서 벗어난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은 곧바로 ‘다윗’에게로 달려가 이 소식을 전하고, ‘다윗’은 그날 밤, 그 위기의 순간, 자신과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과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단 하나의 변수라도 있었으면, 이들의 계획은 실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위기의 순간마다, 긴박한 상황마다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무엘하 15장’을 보면 ‘압살롬’의 반란 초기에 믿었던 부하들과 특히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섰다는 절망의 소식을 들은 ‘다윗’이 ‘15장 31절’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다윗’은 그 절망의 상황에서도 ‘기도의 자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의 상황에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기도라는 하나님의 방법을 붙듭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 가운데 서 있는 ‘예배자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에 ‘압살롬’과 그의 책사들의 눈을 가리시고, ‘아히도벨’의 계획을 어리석게 만드신 것입니다. 교만한 악인들의 계획을 엎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가 어떠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지혜가 세상의 지혜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 한 가지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며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세상이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살아가도 고난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고난보다 더 큰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앞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예배자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시고, 우리의 삶과 가정과 자녀를 회복시켜 나가실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나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예배자의 삶을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 가정과 삶의 고난과 문제 가운데 있는 악한 자와 사탄의 계략을 어리석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선한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와 모임): 주일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성령충만을 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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