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26. 삼하 15: 7-37, 고난 가운데 기도하는 예배자

2024.10.23 08:38

예수인교회

조회 수176

삼하 15: 7-37, 고난 가운데 기도하는 예배자, 찬 263장(이 세상 험하고)

‘사무엘하 15장’은 ‘압살롬의 반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이 4년 동안 반역을 계획하고 드디어 반란을 세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쳐 들오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이 반란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또 다시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그 죄가 살인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자식들이 그 죄를 그대로 따라하는 ‘가정이 무너지는 죄’가 되고, 결국에는 그 위대한 축복과 승리를 거둔 ‘다윗’마저 무너지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됐지, 작고 소소한 것, 남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 ‘거짓말, 미움, 시기와 이간질, 음행’과 같은 것에는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또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해 “회개하면 되지,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실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주부터 살펴보고 있는 ‘다윗’과 그 가정이 죄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죄가 그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심각하게 무기력하게 만들고 무너뜨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로 시작된 고난을 겪으면서, 그 고난 속에서 다시 영적 회복을 해 나가게 되고, 그 결과 다시 일어서고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있는 믿음의 성도가 영적 회복과 삶의 회복을 위해서는 첫 번째로 나의 삶의 상황 속에서 선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는 기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윗은 올리브 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는 올라가면서 계속하여 울고, 머리를 가리고 슬퍼하면서, 맨발로 걸어서 갔다.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다윗’은 이제 예루살렘에서 나와 ‘올리브 산’, 즉 ‘감란 산’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서 세 가지 행동을 합니다. 첫 번째는 울며, 두 번째는 머리를 가리고, 세 번째는 맨발로 갑니다.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다윗’은 한 마디로 망한 것입니다. 끝난 것입니다. 다시 회복될 희망이 없는 절망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3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누가 다윗에게, 압살롬과 함께 반역한 사람들 가운데는 아히도벨도 끼여 있다는 말을 전하자, 다윗이 기도하였다.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본문을 보면 ‘압살롬’과 함께 한 사람들 중에 특별히 ‘아히도벨’이라는 인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히도벨’이란 인물은 ‘밧세바’의 할아버지로 당시에 가장 뛰어난 지략을 지닌 책사였습니다. 쉽게 말해, 삼국지에 ‘유비’ 옆에 ‘제갈량’이 있고, 또 조선왕조에 ‘수양대군’을 ‘세조’로 만든 ‘한명회’가 있다면, ‘다윗’ 옆에는 ‘아히도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히도벨’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 눈에는 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조건이 됐던 것입니다. 따라서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있다는 소식은 ‘다윗’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또 희망이 아닌 절망의 소식만이 들리는 절대 절망의 상황 가운데 ‘다윗’은 ‘31절 하반절’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머리가 좋고, 돈이 많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어려움이 생기지 않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문제는 생기고, 그 문제가 해결되어도 또 새로운 문제가 다가오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백성은 그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기도가 절망과 통곡의 기도가 아닌 그 절망을 희망으로, 환란을 승리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바라보는 기도의 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면, ‘다윗’은 그냥 “도와주세요”라는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합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섰다는 것은 절망적인 소식이었지만, 반대로 ‘아히도벨’의 모략이 실패하면 ‘다윗’이 다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윗’은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든 사람이 들으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소식을 반대로 하나님의 주시는 기회로 믿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반전의 역사를 바라보고 끝까지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고난 가운데 믿음의 성도가 영적 회복을 위해서는 믿음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자 사독과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에게 가져옵니다. 언약궤가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 돌려놓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다윗’은 자신의 문제의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뒤에 왕이 사독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궤를 다시 도성 안으로 옮기시오. 내가 주님께 은혜를 입으면, 주님께서 나를 다시 돌려보내 주셔서, 이 궤와 이 궤가 있는 곳을 다시 보게 하실 것이오.” 바로 ‘다윗’은 고난 가운데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자리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고난의 인생을 축복의 삶으로, 우리의 자녀들의 삶을 승리의 삶으로 바꾸어 나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또 눈여겨 살펴볼 말씀은 본문 ‘37절’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친구인 후새는 성으로 들어갔다. 같은 시간에 압살롬도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이 말씀을 보면 ‘후새’를 ‘다윗의 친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친구’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친구’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지키는 자, 보호하는 자’라는 뜻으로, 양을 지키는 ‘목자’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다윗의 친구 후새”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이 ‘후새’를 ‘다윗을 지키는 자’, ‘다윗을 보호하고 승리케 하는 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잃어버린 양처럼 죽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후새’라는 목자를 통해 그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7절’에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지금 ‘압살롬’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함락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누가 들어갔습니까? ‘다윗의 친구 후새’, ‘다윗을 지키길 자’가 앞서 먼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상황만을 보면,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다 점령하고 ‘다윗’은 다 끝나고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먼저 들어간 하나님의 사람 ‘후새’가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이 ‘후새’를 통해 하나님의 반전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와 고난과 어려움이 우리의 인생을 다 차지해 버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압살롬’처럼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고난 가운데, 절망 가운데 우리를 지키시고, 다시 일으키시고, 승리케 하실 계획을 이미 다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우리를 다 점령하고 지배하고 다 끝난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다시 회복되고 일어날 길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미 우리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건지고,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우리의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능력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응답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자기의 능력과 계략과 수단과 자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의 길을 계획하지만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바로 ‘다윗’은 그의 죄로 이렇게 힘든 고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을 믿고, 끝까지 기도하며,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기도 제목: 우리의 삶, 가정에 있는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바라보며, 담대히 이겨나가게 하소서. 그리고 문제와 어려움이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가 되는 하나님의 반전의 역사가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 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 부터 지켜주소서.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게 세워 주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