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23. 삼하 13: 20-39, 결국 죄로 무너진 가정

2024.10.17 08:59

예수인교회

조회 수165

삼하 13: 20-39, 결국 죄로 무너진 가정, 찬261장(이 세상의 모든 죄를)

오늘 본문 말씀은 ‘형제 살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제 살펴본, ‘암논’이 자신의 이복 여동생 ‘다말’을 범하자, 그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이 2년 동안 치밀한 준비를 해 ‘암논’을 죽이는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그토록 하나님 앞에 신실했던 ‘다윗’이 자신의 저지른 죄로 인해 그 집안에 칼이 끝이지 않고, 결국 그 가정이, 그 자녀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같은 죄로 무너져가는 ‘다윗’의 자녀들과 가정을 보면서, 우리 자녀와 가정을 죄로부터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 가정을, 또 우리 자녀들을 죄로부터 지키고,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축복의 자녀, 축복의 가정으로 세워가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요나답’을 통해 우리는 ‘죄의 유혹과 악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 ‘32, 3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 나서서 말하였다. “임금님, 젊은 왕자들이 모두 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암논 한 사람만 죽었습니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보인 날부터, 압살롬은 그런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높으신 임금님께서는, 왕자들이 다 죽었다고 하는 뜬소문을 듣고 상심하지 마십시오. 암논 한 사람만 죽었을 따름입니다.” ‘압살롬’은 그의 형 ‘암논’을 죽이고, 그의 외할아버지가 있는 ‘그술’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이 ‘다윗’과 왕궁의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다윗’은 모든 왕자들이 죽은 줄로 알고 큰 슬픔과 고통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데 그럴 때, ‘요나답’이 ‘다윗’에게 “암논만 죽였을 것이다”라고 ‘다윗’을 위로합니다. 그런데 이 ‘요나답’이 어떤 사람입니까? ‘13장 3절’“요나답은 아주 교활한 인물이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그는 이 모든 비극과 죄악의 시작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암논’에게 거짓된 방법으로 ‘다말’을 범하게 하였고, 또 지금은 ‘다윗’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죄를 감추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 비극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요나답’을 보면서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고, 죄의 모습이고,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마치 ‘요나답’처럼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통해 유혹합니다. 물질을 통해 탐욕을, 성욕을 통해 음란을, 시기와 미움을 통해 다툼과 분열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어디서 시작됩니까? 내 삶에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소중하게,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가치를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에서 ‘흙’이란 단어는 ‘먼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먼지’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서 가장 존귀한 가치를 가진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 ‘먼지’같은 가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이, 우리 자녀가 죄의 유혹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존귀한 존재로서 축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압살롬’을 통해, ‘믿음의 백성은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도 찾아가서 말하였다. “임금님, 제가 이번에 양털을 깎게 되었으니, 임금님도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이 아들과 함께 내려가셔서, 잔치에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누이가 ‘암논’에게 범해지고 버림을 받게 되자, 2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준비를 하고, 결국에는 ‘암논’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일로 ‘압살롬’은 본문 ‘37절’에 자신의 외할아버지 집으로 도망을 하고, 나중에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아버지 ‘다윗’에게까지 반역을 하다 죽게 되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이 말씀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원수를 갚을 권한을 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억울함, 원수로 죄를 짓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잠언 20장 2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을 갚겠다” 하지 말아라. 주님을 기다리면, 그분이 너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압살롬’도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때, 자신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우리의 억울함, 원수로 인해 우리의 삶이 피폐되고 악한 생각으로 가득차길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그 억울함을 해결하심을 믿고, 우리는 우리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면,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는 높이시고, 우리의 원수들은 낮추시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결국 ‘암논’과 ‘압살론’의 죄와 죽음, 그로 인해 그 가정이 무너진 결정적 이유는 바로 ‘다윗’이 그 믿음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다윗’입니다. 우리는 이 ‘다윗’을 통해 죄를 방치하면 그 죄가 더 큰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압살롬은 에브라임 근처의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고 있었다. 이 때에 압살롬이 왕자들을 모두 초대하였다.” 이 말씀은 그 ‘암논’이 누이 ‘다말’을 욕 보인지 2년이 지났다는 말씀합니다. 성경은 2년이라는 시간을 말씀하면서 ‘다윗’이 ‘암논’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암논’이 ‘다말’에게도 수치를 회복할 수도 있는 관심과 사랑과 배려를 베풀었다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압살롬’과도 원수가 아니라 형제간의 의의를 회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이 자식들 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동안 아무도 어떤 노력도, 어떤 회개나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이 죄를 모른 척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극적인 사건을 보면서 가장 큰 문제는, ‘다윗’이 이 죄의 문제에 너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다윗 왕은 이 이야기를 모두 듣고서, 몹시 분개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분개만 하고, 화를 낼뿐 이후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암논’을 책망하고, 회개할 기회를 만들거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이 죄의 문제에 무감각해졌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기 위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사울’도 죽이지 않고 오히려 고난의 삶을 선택할 정도로 신실했던 ‘다윗’이 이렇게까지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장 1절’을 보면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을 뒤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럼 ‘13장’ 앞에 있는 ‘12장 후반’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요압’이 ‘암몬’을 점령하고, ‘다윗’에게 나머지 도성을 직접 점령하여 임금님의 이름이 승리자의 이름에 기록되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12장 3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암몬 왕의 머리에서 금관을 벗겨 왔는데, 그 무게가 금 한 달란트나 나갔고, 금관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다윗은 그 금관을 가져다가, 자기가 썼다. 다윗은 그 도성에서 아주 많은 전리품을 약탈하였으며,” ‘다윗’이 ‘암몬 왕’의 금 한 달란트나 나가는 금관을 자기가 썼다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무게가 30kg이 넘는 화려한 왕관을 쓰고, 그 승리의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전까지 모든 전쟁의 승리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드렸던 ‘다윗’이 죄로 무너지게 되니까,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더 탐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끊어지고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해서도 무감각해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죄에 대한 무감각이 결국에는 자신의 자녀들을 망치고, 가정이 무너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다윗’에게 이 문제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금하고 있지만, 당시 가나안의 문화, 세상의 기준에서는 ‘근친상간’은 큰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볼 때, 이 죄의 심각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기준은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의 죄가 자식들에게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보다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하심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인 우리의 믿음과 삶이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여기서 ‘기업’이란 뜻은 ‘상속’, ‘유산’이란 뜻인데, 이 단어의 어원이 ‘하나님께 피리와 악기로 찬양할 때 주어지는 은혜와 축복’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자녀를 상급으로 주신 이유는 그 자녀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며,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승리와 축복을 누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삶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가정과 자녀가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으로서 그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부모된 우리가 먼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자녀들에게 보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자녀와 가정이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지키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살아가게 하소서.

중보기도. (목: 교회를 섬기는 자들): 목회자들의 성령충만하여 맡은 사역과 영혼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하게 하소서. 교회 제직, 서번트, 목자, 팀장, 봉사자들의 섬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게 하소서.

댓글 쓰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