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20. 삼하 12: 15-25, 영적 회복 탄력성을 가져야 합니다.
2024.10.11 08:48
예수인교회
삼하 12: 15-25, 영적 회복 탄력성을 가져야 합니다. 찬420장(너 성결키 위해)
‘영적 회복 탄력성’은 어떤 시련과 역경 그리고 어떤 상처에도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상처도 당하고, 억울한 일도 당하고, 반대로 남을 힘들게 하거나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애통함과 주저앉음이 아니라, 상실함이 아니라, 다시금 원래의 신앙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영적 회복 타력성”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11장’에 그렇게 하나님 앞에 그렇게 끔직한 죄를 범하였지만,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라는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영적 회복 타력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는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16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윗이 그 어린 아이를 살리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금식하였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와서도 밤을 새웠으며, 맨 땅에 누워서 잠을 잤다.”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다윗’은 금식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다윗’은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아픈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다윗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듣게 된 자신의 죄를 듣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으로서의 권위와 그동안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그 명예를 잃게 되는 두려움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더 두려웠던 것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큰 죄를 짓고, 그 죄가 세상에 드러나 후에 회개하며 지은 찬양입니다. 그래서 ‘시편 51편 10절부터 12절’에 ‘다윗’은 이렇게 통곡하며 회개를 합니다.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며, 주님의 성령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내게 자발적인 마음을 주십시오.” ‘다윗’의 눈물의 기도를 보면, ‘다윗’이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즐거움, 그 은혜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죄를 지은 ‘다윗’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왕으로 잃게 될지도 모르는 명예와 권위 그리고 장차 겪게 될 부끄러움과 수치와 조롱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관계가 깨져있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자신의 죄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계속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펜데믹’을 지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아무리 세상의 과학이 발달하고, 인류가 위대하다고 해도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도 무너지는 연약함이었습니다. 더구나 믿음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죄를 이기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히 세상의 가치관인 ‘교만’과 ‘거짓’과 또 ‘탐심’과 ‘탐욕’, ‘음란’과 ‘물질만능주의’가 삶의 목적이 되는 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순간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연약을 강함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아이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일주일 만에 죽게 됩니다. ‘다윗’이 간절히 원했던 기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응답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자신의 뜻대로, 원하는 대로, 아니 정말 그렇게까지는 안 되기 위해 몸부림쳤음에도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면서도 이렇게 행동을 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땅바닥에서 일어나서,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 입은 뒤에, 성전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경배하였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오자, 음식을 차려오게 하여서 먹었다.” 바로 “성전으로 들어가 주님께 경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을 멈춘 ‘다윗’에게 그 이유를 묻는 신하들에게 ‘22절, 2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대답하였다. “아이가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면서 운 것은, 혹시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계속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바로 ‘다윗’은 자신의 생사화복과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렸고, 그러나 그 일에 대한 결과는 자신의 뜻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결정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정말 원하지 않았던 상황의 결과를 맞이하였지만, ‘다윗’은 자신의 뜻과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결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금식과 기도를 끝내고,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의 자리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했다면, 말씀대로 순종했다면, 어떠한 결과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믿고 담대히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승리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또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 판단, 능력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열하실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 내 능력, 내 상황과 조건으로 내가 할 일을 결정하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아니라 내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판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일하시기도 전에 ‘안 된다’고 포기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삶에 주님께 사시는 것은 내 삶의 주권을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닌 주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능력과 상황을 내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때,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가 기준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이 기쁨이 되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이 그 끔찍한 죄악 가운데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또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솔로몬’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시면서, “주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은혜를 회복 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지금 삶의 문제와 어려움과 기도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영적 회복 탄력성을 회복시켜, 이제는 그 삶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주님, 내 안에 영적 회복 탄력성을 회복시켜 주소서. 내 안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끊을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어, 이제는 내 삶이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와 모임): 주일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