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16. 삼하 10: 1-19, 주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2024.10.04 09:37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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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0: 1-19, 주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찬 342장(너 시험을 당해)

통일 왕국의 왕이 된 ‘다윗’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주변의 적들과의 10여년 간의 정복전쟁을 통해 그 모든 강국들을 평정하고, 이제 완전히 항복시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냥 싸움을 잘하는 왕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법궤를 가져오심으로 예배를 회복시키셨고, 또 ‘다윗’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보면 악한 사탄은 주변의 이방 나라들을 사용해서 ‘다윗’의 왕국이 더 강성해지기 전에 그것을 막기 위해 무섭게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그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적들을 다 무릎 꿇게 하고, ‘다윗’의 나라는 적들의 공격으로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성해졌고, ‘다윗’과 하나님의 이름은 더 높여졌으며, 이스라엘은 열방이 두려워하는 강한 나라가 되어 갔습니다. 성도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믿음의 성도가 하나님의 군사로써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면 어둠의 세력들이 무섭게 사방에서 공격해 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많이 싸우게 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을 싸우는 성도는 이 영적 전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셔서 전투를 치룰 때마다 오히려 나라가 더 강성해졌듯이 믿음의 성도도 크고 작은 영적 전쟁을 싸우고 나갈 때마다 승리하고 더 큰 부흥과 은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의 동북쪽에 위치한 ‘암몬’ 족속과는 ‘다윗’이 화친을 맺으려고 했었습니다. 본문 ‘1절, 2절’ 말씀입니다. “그 뒤에 암몬 사람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그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 다윗은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나도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어야겠다” 하고서, 신하들을 보내어,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게 하였다. 그래서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사람의 땅에 이르렀다.” ‘나하스’는 ‘다윗’을 통해 ‘사울’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울’에게 핍박을 받던 ‘다윗’을 여러 번 도와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비록 그 도움이 ‘나하스’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도움을 받은 것을 감사했고, 그 때 받은 은혜를 그의 아들 ‘하눈’에게 갚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말한 “은혜를 베풀리라”는 뜻은 “압도적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헤세드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암몬’에서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암몬 사람의 대신들이 자기들의 상전인 하눈에게 말하였다. “다윗이 임금님께 조문 사절을 보낸 것이 임금님의 부친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이 도성을 두루 살피고 정탐하여, 함락시키려고, 다윗이 임금님께 자기의 신하들을 보낸 것이 아닙니까?” ‘암몬’의 신하들은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보자마다 의심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막 왕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하눈’에게 가서 ‘다윗’의 선한 뜻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하눈’은 신하들의 어리석은 조언을 그대로 믿고 하지 말아야 할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 내용이 ‘4절, 5절’입니다. “그래서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서, 그들의 한쪽 수염을 깎고, 입은 옷 가운데를 도려내어, 양쪽 엉덩이가 드러나게 해서 돌려보냈다. 사람들은 이 일을 다윗에게 알렸다. 조문 사절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였으므로, 다윗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맞으며, 수염이 다시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러 있다가, 수염이 다 자란 다음에 돌아오라고 하였다.” ‘수염을 깎고 옷을 잘라 엉덩이를 들어내게 했다’는 것은 당시에 가장 큰 수치와 모멸감을 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윗’의 사절단이었다는 것은 곧 ‘다윗’에게 큰 수치를 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결국 ‘암몬’은 나라가 망하는 재앙을 겪게 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암몬’의 지도자들의 문제를 두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는 그들은 ‘다윗’의 선한 행동과 의도를 아무 근거 없이 의심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시선으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들의 상식과 관점으로 ‘다윗’을 보았습니다. ‘나라면, 다윗처럼 강한 군대를 갖고 있으면 결코 암몬과 같은 약한 나라와는 화친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시선’입니다. ‘관점’입니다. 누구의 시선과 관점으로 우리 앞에 있는 문제를 바라보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시선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의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 세상의 관점을 예수님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암몬’의 이런 큰 실수를 한 것은 어리석은 지도자 ‘하눈’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들의 신하들의 말만 듣고 결정을 합니다. ‘다윗’에 대한 주변의 이야기나 자신의 아버지 ‘나하스’와 ‘다윗’의 관계 등을 알아보고 신중히 결정한 것이 아니라, 신하들의 말만 듣고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누구의 의견을 듣습니까? 세상의 문제와 어려움 앞에 세상의 말을 듣습니까? 아니면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믿음의 백성의 영적 싸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의 말을 아니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계속해서 보면, ‘암몬’의 신하들은 자신들이 모욕과 수치를 주었던 사신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리고’에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막강한 ‘다윗’의 군대가 ‘암몬’으로 진격해 올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더 큰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암몬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을 사게 된 줄을 알았다. 암몬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어서, 벳르홉의 시리아 사람과 소바의 시리아 사람에게서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의 왕에게서 천 명과, 돕 사람들에게서 만 이천 명을 용병으로 고용하였다.” 그들은 ‘다윗’의 군대를 대비할 연합군을 만드는데,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던 ‘아람’의 나라들의 군대를 용병으로 사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수가 무려 32,000명에 이르고 그들의 병거와 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게 된 ‘다윗’은 망설임 없이 전쟁에 나가게 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요압에게 전투부대를 맡겨서 출동시켰다.” 그러나 ‘8절’을 보면 ‘아람’과 ‘암몬’ 군대들도 이미 도착해 전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군대를 북쪽과 남쪽으로 에워쌌습니다. 특히 이 곳은 평지로 특히 병거와 말이 있던 ‘아람군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윗’의 군대는 사방이 적들로 에워싸임을 당하고, 또 지형과 환경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보면 ‘요압’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용감하게 싸워서 우리가 우리 민족을 지키고, 우리 하나님의 성읍을 지키자. 주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요압’은 그 동생 ‘아비새’에게 두 번이나 “용기를 내라”고 말을 합니다. 이만큼 지금 상황이 절박하고, 위기의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수많은 적들을 보고 동생 ‘아비새’에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왜 이 싸움을 하느냐? 우리는 우리 민족을 지키고, 하나님의 성읍을 지키기 위해 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저 적들은 돈을 쫓아서, 돈에 팔려온 용병들이지만, 우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 백성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면서 ‘12절 하반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비록 지금 이 상황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케 하실 것이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적들만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의 군대’는 흔들리지 않고 싸워 나갑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이 세상의 싸움 가운데 나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 이 하루를 살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아람’의 용병들처럼 돈을 얻기 위해 싸움에 나가십니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싸움이 하나님의 선한 싸움이 아니라 세상의 돈만을 얻기 위한 싸움이라면 그 싸움은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다윗의 군대’가 담대히 싸움에 나오자 ‘암몬 군대’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가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전쟁의 승리의 원리 하나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백성은 그 삶속에서, 또 사명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영적인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명의 자리, 그 삶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포기 하지 않는 것입니다. 끝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14절부터 18절’까지 말씀은 도망쳤던 ‘암몬’과 ‘아람’ 군대가 다시 군대를 정비하여 ‘헬림’이라는 곳으로 쳐들어오자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나가 그들을 완전히 전멸시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의 전쟁을 보면, 다윗은 어떤 적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적들을 쳐들어 물리칩니다. 영적 전쟁은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와도 우리가 담대히 나가면 적들은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다윗’은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그 때마다 “왜 자꾸 나를 공격하는 거지?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왜 공격하는 거지?”라며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알았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 기름부음 받은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이 이룰 사명이 크기 때문에 어둠의 적들이 공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고 담대히 나가 싸웠고, 전쟁을 치룰 때마다 약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성해졌던 것입니다. 세상이 더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적 전쟁을 하는 믿음의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적 전쟁에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담대히 나가 싸운다면, 그것을 좋게 여기시는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 가정, 삶, 건강, 문제 가운데 있는 영적 전쟁을 담대히 싸워 나갈 수 있는 믿음과 성령충만을 부어 주소서. 그래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도의 부르짖음과 말씀의 순종으로 반드시 승리하게 하소서.

중보기도(금: 예배와 모임): 주일 예배와 모든 목장과 새벽 예배와 모든 모임 가운데 주의 영이 임하시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모든 주의 종들이 어둔 세상을 말씀으로 빛으로 비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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