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15 삼하9:1-13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2024.10.02 21:39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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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shiper 15 삼하9:1-13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찬 393/통447 오 신실하신 주

다윗은 인생의 절정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다윗은 올라왔을 때 복수가 아니라 감사를 생각했고,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 처음 한 일이 바로 20년 동안 방치되었던 하나님 궤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성막으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는 것은 신앙의 회복입니다. 사울 기간 잃어버렸던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다윗에게는 가장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땅을 회복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입니다. 바로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요나단에게 받았던 그 은혜를 다윗은 기억하고 갚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은혜와 언약을 기억했고,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서 은혜를 베풉니다. 그런데 그때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 싶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배경과 이유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1절)

다윗은 ‘요나단을 보아서라도…’라고 하면서 므비보셋을 찾습니다. 사무엘상 18장 14-16절에 다윗과 요나단이 언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쫓기는 입장인데 요나단이 다윗에게 생명을 부탁합니다. 요나단의 믿음의 고백이며,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요나단을 기억하며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사람이 보통 어려울 때에는 은혜를 꼭 갚겠다고 하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면 복수할 것들은 기억하지만 은혜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내가 했던 노력과 아픔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에게 받았던 은혜와 언약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받았던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잊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서운하고 섭섭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6-8절)

다윗은 사울의 집안에서 종노릇 하는 시바라는 사람을 불러서 사울의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시바는 이야기해주었고, 다윗은 사울의 집안에서 종노릇 하는 시바라는 사람을 불러서 사울의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므비보셋은 어떤 상태일까요? 죽음을 앞둔, 두려움이 가득하고 불안에 떠는 모습으로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님의 종 므비보셋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겁먹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울이 가졌던 재산과 종, 그리고 다윗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할 수 있게 합니다. 다윗은 결코 말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찾았고,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하는 신앙이 많습니다. 물론 말로도 안하는 사람들보다는 좋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말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다윗이 보여준 것과 같습니다. 매우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도바울이 사랑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사랑은 오래참고…’라고 시작합니다. 즉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VIP를 섬기려고 할 때, 우리 주변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없을까요?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결정했다면 매우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사랑은 감정적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셋째. 신실하게, 변함없이 행동해야 합니다. (12-13절)

오늘 9장의 마지막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보여주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약속했던 모든 것을 다윗은 신실하게 변함없이 제공해주었습니다. 우리는 ‘한 두 번’하는 것은 잘 합니다. 큰 맘 먹고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끝까지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유대사회에서 당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냥 먹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사람, 존중하는 사람과만 밥을 먹었습니다. 우리처럼 그냥 억지로 먹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식탁교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화입니다. ‘내가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로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과 함게 밥을 먹는다는 것은 왕과 같이 대우해주고 존중해주는 것이고 왕처럼 존귀하게 생각해주는 것입니다. 비록 두 다리를 절고 있을지라도요.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은 절대로 다윗과 므비보셋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본문을 성경에 담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9장은 왜 기록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시는 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하시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8절에 ‘이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와 같은 나를 돌아봅니까?’라고 말합니다. 너무 은혜가 큰 것입니다. 불려와 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재산도 회복시켜주고, 왕의 상에서 먹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어지지 않아 므비보셋은 ‘죽은 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 지금은 개와 굉장히 친해서 이 말이 크게 모욕적으로 다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 개는 매우 나쁜 표현입니다. 그 나라는 개를 먹지도 키우지도 않습니다. 죽은 개와 같다고 말할 정도로 자격 없는 나를, 우리를 다윗은 왕으로 대우해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존재입니다.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으로 인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이 있기 때문에 므비보셋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빛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은혜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윗 자신이 받은 은혜, 말할 수 없는 은혜, 그 은총을 받았기에 므비보셋과 같은 사람을 찾아서, 숨겨있고, 가려져 있고,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지만 찾아서 빛으로 불러내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다른 곳으로, 필요한 곳으로 흘러 가고 있는지?”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가 서 있는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흘려 보내는 예수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말씀기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나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헤세드(변함없는 신실하신 사랑)가 흐르게 하소서.

2. 요일기도:(목:지도자들, 가정, 위정자들): 우리에게 ‘한 성령’을 부어주소서, 가정이 회복되게 하소서, 이 나라를 이끄는 자들이 바른 가치관으로 이끌어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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