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14. 삼하 8: 1-8, 승리를 안겨 주셨다.
2024.10.02 08:32
예수인교회
삼하 8: 1-8, 승리를 안겨 주셨다. 찬 353장(십자가 군병 되어서)
본문은 이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다윗’이 ‘7장’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한 후, ‘정복 전쟁’을 이뤄나가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으로 ‘B.C. 1003년’부터 ‘990년’ 정도까지 약 10여년에 걸쳐서 벌어진 전쟁들을 간단하게 정리한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본문은 ‘다윗’의 ‘정복 전쟁’의 첫 이야기로 ‘블레셋’에 대한 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그 뒤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그들을 굴복시키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다.” 여기서 ‘메덱암마’라는 곳은 어떤 특정한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블레셋’의 수도였던 ‘가드’를 비롯해 주변 도시들을 모두 점령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메덱암마’라는 뜻이 ‘어머니 성’이라는 뜻으로, ‘블레셋이 시작된 곳’, ‘블레셋의 근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메덱암마를 빼앗았다’는 것은 ‘블레셋의 근원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블레셋 정복’은 ‘1절’에 간단하게 말하지만 이스라엘 역사에 이 전쟁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승리였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비롯해 주변 국가들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나게 강한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사사기’를 통해 이 ‘블레셋’을 살펴보았지만, 그들은 일찍부터 지중해를 통해 철기문화를 가지고 들어와 철제 무기와 병거를 만들고, 또 그들은 해양민족으로 매우 호전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이 쳐들어오면 사사들이 일어나 그들을 막는 수준이었지, 아무도 감히 ‘블레셋’의 본거지를 장악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때에 이런 놀라운 꿈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 같은 적,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과 괴로움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행하시면, 그 어떤 적도, 우리의 삶에서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도, 질병도, 어려움도 반드시 응답받고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승리의 하나님’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는데, 이 뜻은 ‘하나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깃발아래 서게 될 때, 지금껏 우리가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어떤 불가능한 적도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전쟁은 ‘모압’과의 전쟁입니다. 그 내용이 ‘2절’입니다. “다윗은 또 모압을 쳤다. 그는 모압 포로들을 줄을 지어 세운 다음에, 그들을 땅에 엎드리게 하고, 매 석 줄 중에 두 줄은 죽이고, 한 줄은 살려주었다.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성경을 보면 그 동안 ‘모압’은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패역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포로를 처리하는 방식이 조금은 특이합니다. 우리 성경은 이 부분을 남자를 세 줄로 세워, 그 중에 2/3를 죽이고, 1/3를 살렸다고 번역을 하지만, 또 ‘개역개정 성경’은 이들을 눕혀 놓고 두 줄을 그어 그 키가 두 줄을 넘기면 죽이고, 그 키가 작아서 한 줄을 넘지 않으면 살렸다고 번역을 합니다. 하여튼 이것은 결과적으로 한마디로 그들의 ‘군사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은 반드시 힘을 잃게 되고,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쟁은 ‘소바 왕’ ‘하닷에셀’과 ‘아람군’과의 전쟁입니다. ‘3절, 4절’입니다.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자기 세력을 되찾으려고 출정하였을 때에, 다윗이 그를 치고, 그에게서 기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다윗은 또 병거를 끄는 말 가운데서도 백 필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조리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당시 ‘아람 족속’은 그때까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지 못한 작은 도시 국가들로써 그때가지는 ‘이스라엘’을 침략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바 왕 하닷에셀’이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면서 ‘이스라엘’ 내에 북과 남으로 나눠져 전쟁을 하면서 그 힘이 약해지는 것을 보고, 주변 ‘아람 족속’을 귀속시키고, 당신 최강의 무기였던 말과 병거를 들여와서 군사력을 키워 ‘이스라엘’을 침략할 큰 야욕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다윗’의 힘이 미치지 않는 ‘유프라테스 강’에 군사를 집결시켜 ‘이스라엘’을 침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닷에셀’이 ‘유프라테스 강’에서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그들을 공격해서 전멸시키게 됩니다. 이 때 ‘다윗’이 사로잡은 포로만 ‘기마병 1,700명’, ‘보병 20,000명’이라는 것을 미루어 보아 죽은 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본문 ‘4절’에 보면 승리한 ‘다윗’이 적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병거와 말들을 빼앗았습니다. 우리가 사사기를 통해 살펴보았지만, 당시 병거와 말들은 모든 강대국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최첨단 전쟁 무기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가 그 나라의 군사력을 좌우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말 100마리만 남기고, 모든 말들의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립니다. ‘다리의 힘줄을 끊었다’는 것은 ‘말을 달리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는 군사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세상의 관점과는 전혀 반대가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럼 ‘다윗’은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겠습니까? 그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7장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왕을 세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말씀하시는 내용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왕이라 해도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군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이집트로 보내서도 안 됩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전쟁에 대한 세상적 전략의 기본을 완전히 뒤엎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군대는 이방 군대처럼 병거와 말에 의지하는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를 지켜줄 병거와 말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은행 어카운트에 돈이 많고, 부동산, 주식이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과 평생의 삶을 바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것들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며 그것에 집착해 사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 그것들이 내 자녀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착각을 말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6절, 1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윗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 바로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병거와 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이란 의미는 ‘장소’의 의미와 ‘상황’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어떤 상황이든지, 적들이 얼마나 강하든지, 그들이 어떤 난공불락의 요새에 있다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적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싸움에서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의 더 강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강하고, 두렵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강함과 능력에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승리를 안겨 주셨다”라는 단어의 뜻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기게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세상과의 전쟁, 삶과의 전쟁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기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백성은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관점, 우리의 시선이 이제는 내가 아니라,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와 환경을 내 관점, 내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두려움에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관점에서 상황을 보면 모든 상황은 내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보면, 이 상황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6절, 14절’을 보면,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하나님을 힘입어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쓰셔서 ‘다윗’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펼쳐 나가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힘이 필요합니까? 무엇을 위해서 필요합니까? 저와 여러분의 목적을 위해서 아닙니다. ‘사울 왕’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이룬 승리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승리하는 곳마다 자신의 동상을 세워 자신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히 자신의 모든 승리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승리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께서 내 삶에 일하심을 믿고, 이끌어 가심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삶을 통해 능력을 나타내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사람도 쓰신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쓰고 계신다는 것을 삶으로 고백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삶의 신앙 고백, 이 신앙의 자리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항상 나의 삶을 통해 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내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반드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가정과 삶의 문제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게 하시어, 담대히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게 하소서. 내 삶이 나의 목적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세상의 유혹과 죄악으로 부터 지켜주소서. 교육부, 유스, 청년들을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뤄가게 세워 주소서. 다음 세대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붙들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