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7. 삼하 4: 1-12,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는 승리.

2024.09.12 08:30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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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4: 1-12,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는 승리. 찬 542장(구주 예수 의지함이)

‘사무엘하 4장’은 ‘사무엘서’ 중에 가장 짧은 장인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죽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이스라엘 온 백성도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군대장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서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을 직역하면 “손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는 뜻으로, 우리말로 하면 그 충격에 “넋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백성도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로잡히다’는 뜻은 ‘위기를 느끼다’라는 뜻으로 ‘비상사태’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아브넬’의 죽음은 ‘이스보셋’과 ‘북이스라엘’에게는 “이제는 자신들을 지켜줄 사람, 능력이 없어졌다”는 큰 충격과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세상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의지하던 그 존재가 무너지면 모든 게 다 무너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없어진 ‘북이스라엘’에게 결국 또 다시 위기가 닥치는데 바로 ‘이스보셋’도 순식간에 암살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2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이 암살 사건의 범인은 놀랍게도 ‘이스보셋 왕’의 최측근인 친위대 왼팔, 오른팔이었던 ‘바아나’와 ‘레갑’입니다. 이 두 사람 모두 ‘사울’과 같은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이스보셋’이 자신의 친위대를 구성할 때, 일부러 충성심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는 ‘베냐민 지파’에서 뽑은 것인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보셋’의 가장 최측근이었던 ‘바아나’와 ‘레갑’이 ‘이스보셋’의 목을 베어서 ‘다윗’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바치면 큰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북이스라엘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잠시 정리해 보면, 왕인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군사령관인 ‘아브넬’의 눈치만 보다가 죽임을 당한 ‘이스보셋 왕’, 그리고 충성을 다해 섬겨야할 왕을 배신하고 죽여 자신들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다윗’에게 달려간 ‘바아나’와 ‘레갑’, 그리고 허수아비 왕을 세워 놓고서 계속 권세를 휘두르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왕을 배신하고 나라를 넘기려다 오히려 암살을 당한 ‘아브넬’ 군대장관.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서로 같은 편인데 믿지를 못한 겁니다. 서로 의심하고,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가 밥 먹듯이 바뀌고, 배신을 밥 먹듯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상의 원리와 같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서 나름 성공하고, 잘 나가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아주 화려해 보이지만, 많은 경우 스트레스와 우울증, 불면증과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들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항상 불안해하고, 경계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는 우리의 계산과 영악함과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보셋 왕’을 배신하고 죽인 ‘바아나’와 ‘레갑’은 엄청난 착각을 하며 ‘다윗’에 달려간 것입니다. 본문 ‘8절’ 말씀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다윗에게로 들고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의 생명을 노리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를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주님께서 높으신 임금님을 도우시려고, 오늘에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벌을 내려서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섬기던 왕을 배신하고 머리를 갖다 바치면서 하는 말이 “이것은 주님께서 높으신 임금님을 도우시려고, 오늘에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벌을 내려서 원수를 갚아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실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서도 다툼과 분열이 생기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판단에 하나님의 말씀을 갖다 맞추기 때문입니다. ‘바아나’와 ‘레갑’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의 방법과 수단과 가치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가치관,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그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인생관은 세상의 힘과 권력과 영광과 왕이 되는 것에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9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온 ‘레갑’과 ‘바아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꾸짖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동생 바아나에게 이와 같이 대답하였다. “온갖 죽을 고비에서 나의 생명을 건져 주신 확실히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지금까지 내가 그 환란과 고난 가운데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내 힘과 능력이나 지혜와 군사력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때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길 원했고, 그 약속을 믿고 붙들며 인내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걸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고 불의한 자들의 힘을 빌리는 편법을 쓰게 되면 반드시 ‘이스보셋’과 같이 ‘아부넬’과 같은 불의한 자들에게 또 세상의 힘 앞에 휘둘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그들을 어떻게 하게 됩니까? 본문 ‘12절’입니다. “다윗이 젊은이들에게 명령하니, 젊은이들이 그 두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손과 발을 모조리 잘라 낸 다음에, 그들의 주검을 헤브론의 연못가에 달아 매었다. 그러나 이스보셋의 머리는 가져다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묻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세상적인 수단을 사용한 자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보셋’을 배신한 그들을 심판하고, 자신의 적이었던 ‘이스보셋’을 ‘아브넬’의 무덤에 가져가 진심을 다해 정중히 장사를 지내줍니다. 자신을 핍박했던 ‘사울’의 집안에 대해 끝까지 예우를 갖추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불안에 떨던 ‘북이스라엘’의 11지파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높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영적 능력’의 원리가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으니까, 결국에는 ‘다윗’ 대신에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기다렸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사울’의 진영이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넘어지게 하십니다. ‘다윗’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던 ‘다윗’을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윗’의 손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까지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가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주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삶의 자리를 걸어가는 자들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고 계십니다.

기도 제목: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심을 믿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가정과 자녀들이 하나님이 일하시고 행하시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목: 교회를 섬기는 자들): 목회자들의 성령충만하여 맡은 사역과 영혼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잘 감당하게 하소서. 교회 제직, 서번트, 목자, 팀장, 봉사자들의 섬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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