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6. 삼하 3: 12-39,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2024.09.11 00:08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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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SHIPER 6 삼하3:12-39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 찬 524/통313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오늘 본문은 아브넬이 다윗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통일이 가능한 것을 제안합니다. 다윗과 잘 이야기가 된 후 아브넬은 돌아갑니다. 그때 다윗의 사람 요압이 돌아와서는 아브넬이 그냥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를 냅니다. 그리고는 다윗과 상의 없이 아브넬을 다시 데리고 돌아와 죽이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불같이 화를 내며 요압을 저주하고,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며 오늘의 본문은 마치게 됩니다. 요압은 당시 유다에서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가진 군인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사울 진영에서 유능하고 영향력이 큰 군인이었습니다. 요압은 통일이 된 후 경쟁해야 할 가장 큰 정적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브넬을 처리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요압과 같은 인물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둘려 쌓여 사는 것이 지금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세상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일하십니다. 다윗을 통하여 일하시고, 다윗의 집안,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시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12절)

아브넬은 사울의 집안과 다윗의 집안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점점 권력을 잡아가더니 안하무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울의 후궁을 건드려 이스보셋의 지적을 받자 참지못하고 분노합니다. 그러고는 다윗을 찾아와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물론 아브넬은 실제 그런 능력과 지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는 아브넬의 모습에서는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공의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브넬은 그럴 자신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거스르며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도 아브넬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능력과 힘을 믿고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지도자를 협박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눈감아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과 다르게 운영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과는 다르게 운영되는 곳입니다. 능력과 권력의 힘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 나눔으로 운영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따르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먼저인 사람들입니다. (26-27절)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이유는 동생 복수라는 표면적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넬이 몇차례 경고하지만 아사헬이 무시하고 달려들어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통일된 이스라엘에 아브넬이 가장 유력한 군대장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윗과 상의하지도 않고 죽임으로 전쟁하지 않고 통일 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립니다. 요압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보다 자신의 욕심과 분노가 먼저였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주변에 요압과 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주 흔한 사람들입니다. 요압과 아브넬이 만약 이런 고민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왜 이스라엘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가?, 왜 이스라엘은 이웃나라처럼 보편적인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왜 하나님은 사울이 아닌 다윗을 택하였는가? 그것을 고민하고 깊이 묵상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셋째. 거룩한 분노가 있는 사람들입니다.(28-29절)

다윗은 듣고 엄청난 분노를 쏟아 냅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다윗 자신과 유다 왕국과는 상관이 없는 개인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또한 요압을 공개적으로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끔찍한 병과 집안에 대한 저주를 합니다. 다윗은 왜 이렇게 격렬하게 저주를 하고 있을까요? 왜 이렇게 격렬하게 분노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서 그랬을까요? 다윗이 좀처럼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압의 행동에 대해서 화를 깊이 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요압의 행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정한 반역이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다윗에게는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통일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만한 실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바로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가지고 통일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었을가요? 그래서 다윗은 7년 반이라는 시간을 견뎌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통일이 되기까지 믿음으로 견뎌낸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여러분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에서 선택받아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과 똑같이 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별하며 부르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르시고 끝내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를 이제는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복음을 위한 증인으로 보내십니다. 이때 우리는 아브넬과 요압처럼 살아가면 안 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의 모습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삶이 필요합니다. 거룩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내 욕심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분노가 필요합니다. 내 욕심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애통해하는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을 때에 오늘 본문에서 백성들이 다 알게 되었고, 좋게 여기게 되었고, 백성들이 따르기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요압과 아브넬의 방법이 빠르고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장 1절처럼 ‘점점…’이렇게 일하십니다. 우리 눈에 잘 안보였는데 어느 순간 보면 ‘점점’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느리고 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항상 승리하십니다.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고, 믿음으로 그 자리를 살아내시길 축복합니다.

말씀기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나게 하소서, 다윗처럼 거룩한 분노를 가지게 하소서.

요일기도:(수:다음세대/지도자/자녀들): 교육부, 유스, 청년부 안에 ‘성령’을 부어주소서, 성령의 열매 맺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위한 지도자가 일어나게 하소서, 기도하며 준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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