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5. 삼하 3: 1-11, 다윗의 집안과 사울의 집안
2024.09.10 09:00
예수인교회
삼하 3: 1-11, 다윗의 집안과 사울의 집안, 찬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본문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 ‘다윗’아래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 그 공동체가 가진 특징과 또 반대로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왕이된 ‘이스보셋’, 즉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는 공동체를 대조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다스림 안에서 그 공동체가 가진 은혜, 그 공동체가 누리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다스림 안에 있는 공동체가 가지고 은혜는 “강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에 전쟁이 오래 계속되었다. 그러나 다윗 집안은 점점 더 강해지고, 사울 집안은 점점 더 약해졌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다스림 밖에 있는 ‘사울’의 집안에도 점점 강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본문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 집안과 다윗 집안 사이에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 사울 집안에서는 아브넬이 점점 더 세력을 잡았다.” 여기서 ‘점점 데 세력을 잡았다’는 말씀이 ‘점점 강해졌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6절’에서 ‘더 세력을 잡았다’는 이 의미 안에는 ‘스스로’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스스로 점점 강해졌다’. ‘스스로 세력을 강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스스로 힘이 강해진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브넬’입니다. 그런데 ‘아브넬’은 어떤 사람입니까?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의 후궁 가운데 리스바라는 여인이 있는데, 아야의 딸이었다.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장군은 어찌하여 나의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였소?” 하고 꾸짖었다.” 그는 자기가 섬기던 왕의 여인을 범했던 ‘육적인 욕망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8절’에 보면 ‘아브넬’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자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에 몹시 화를 내면서 대답하였다. “임금께서는 내가, 유다에 빌붙어 살아가는 개로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나는 오늘날까지 임금님의 아버지 사울 집안과 그의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충성을 다하였고, 임금님을 다윗의 손에 넘겨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임금님께서 오늘 이 여자의 그릇된 행실을 두고, 나에게 누명을 씌우시려는 것입니까?” 이 말을 보면, ‘아브넬’이 얼마나 교만하고 무례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땅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다면 ‘교만’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다스리는 땅은 점점 강해지는 반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나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세워진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아브넬’과 같이 육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고,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스스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라고 선포하며 많은 교회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나라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교회와 공동체도 있고, 그 통치 밖에 있는 교회와 공동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이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는 공동체의 특징은 육체적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차고, 교만으로 가득 찬 세상의 힘을 가진 사람이 권세를 얻고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신 왕,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있는 공동체는 사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강해지고, 예수님의 영, 성령이 강해져서 거기에는 예수님의 다스림이 더 견고해지고 그 분이 더 강해지는, 그런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목사나 장로와 같은 사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점점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왕, ‘다윗’의 집안의 특징은 ‘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다스리는 공동체는 ‘점점 강해지고’ 그 공동체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말씀이 있는데, 본문 ‘2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은 다음과 같다. 맏아들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에게서 태어난 암논이고, 둘째 아들은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게서 태어난 길르압이고, 셋째 아들은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태어난 압살롬이고, 넷째 아들은 학깃에게서 태어난 아도니야이고, 다섯째 아들은 아비달에게서 태어난 스바댜이고, 여섯째 아들은 다윗의 아내 에글라에게서 태어난 이드르암이다. 이들이 다윗이 헤브론에서 살 때에 낳은 아들이다.” 이 본문은 ‘다윗’의 집안과 ‘사울’의 집안 간의 전쟁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다윗’이 얻은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앞뒤가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말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을 지금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구약 시대의 문화와 사회적의 관점에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시편 127편 3절부터 5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과도 같으니,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바로 ‘자녀들은 태의 상급’, 즉 자녀가 많다는 것은 하나님이 상급을 많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많다’는 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말씀은 그 복을 어디서 주셨습니까? 바로 ‘헤브론’에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헤브론’에서 ‘다윗의 집안’을 축복하셨습니까? 바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가라’하셨던 그곳,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절대 가면 안 되는 장소,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바보 같은 선택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은혜의 장소인 헤브론으로 갔을 때, 비록 처음에는 ‘이스보셋’과 같이 세상적인 큰 성공을 누릴 수 없었지만, 점차 하나님께서 그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축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는 땅, 공동체가 누리를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은 또 ‘어떤 복이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내리신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시면 결코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복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 이 복은 ‘잘 지켜야 하는 복’이기 합니다. 즉 이 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만 복이 되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지 않거나 하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이 복은 뭐로 바뀝니까? 더 이상 복이 되지 않고 ‘저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얻은 첫째 아들이 ‘암논’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암논’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충신이었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지 않고 난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셨던 이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이라는 그 여동생을 이성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암논’ 그 여동생을 육체적으로 범하고 근친상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이 일 때문에 셋째 아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압살롬’이, 그 ‘다말’이라는 여동생은 자신의 어머니가 나은 친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암논’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고,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지키지 않았을 때, 때를 기다렸다가 ‘암논’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압살롬’이 어떻게 합니까? 이제는 아버지 ‘다윗’마저도 죽이려고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자녀는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암논’도, ‘압살롬’도 흠 없는 자들이라고 말할 만큼 아름다웠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지 않았더니,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고스란히 ‘저주’가 되어서, 칼이 되어서 그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서, 더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지키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는 하나님의 떠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하나님을 붙듭니다. 그런데 복을 받으면 어떻습니까? 복을 주셨으니까, 당연히 더 감사해야 하는데, 더 주님을 붙들며 살아야 하는데, 그 복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고침받고, 근심이 사라지만, 기도의 자리를 떠납니다. 그래서 우리를 복 주실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를 지키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진짜 우리에게 복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내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킬 수 있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의 가정과 목장과 교회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축복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화: 목장/선교지): 모든 목장이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영혼구원에 앞장 서게 하소서. 목원들의 삶속에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게 하소서. 목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어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