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SHIPER 3. 삼하 2: 1-11, 이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됩니다.
2024.09.05 09:12
예수인교회
삼하 2: 1-11, 이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됩니다, 찬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인생에는 누구나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이 심한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기다림’이라는 것이 지루한 것이고, 무엇인가 부족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나 취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기다림’은 ‘신앙을 성숙케 하는 밑거름’과 같습니다. ‘기다림’은 그저 지치고, 지루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선택지가 아니라 기쁨과 승리를 이어주는 하나님이 만들어 나가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다윗의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신 기도 응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뒤에, 다윗이 주님께 “제가 유다에 있는 성읍으로 올라가도 됩니까?” 하고 여쭈었다. 주님께서 그에게 올라가라고 하셨다. 다윗이 다시 여쭈었다. “어느 성읍으로 올라가야 합니까?” 주님께서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알려 주셨다.” 본문을 보면 ‘이 일이 일어난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이 때’가 언제입니까? ‘다윗’을 죽이기 위해 그렇게 쫓아다녔던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었던 때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 왕이 되기에 너무 좋은 시기입니다. 적이 사라진 절호의 기회입니다.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후 15년, 그리고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며, 수치도 당하고, 억울함도 당하며, 또 때로는 미친 척하며 살아야 했고, 때로는 가족을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면서 버텨온 10여년의 지난 세월, 정말 오래 동안 기다려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윗’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기도합니다.
여기에 ‘다윗’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 10여년의 세월 동안 ‘다윗’이 깨달은 것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아무리 발 빠르게 움직이고 행동한다 하더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작은 것도 얻을 수 없다 것을 깨달고 배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변의 상황에 의해서 조급하게 서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보다 결코 앞서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헤브론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지도를 보면, “헤브론으로 가라”는 말씀은 ‘다윗’이 예상했던 응답과는 전혀 다른 응답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을 대신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이나 ‘기브온’이나 ‘세겜’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헤브론’은 유다의 남쪽의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도 30km 이상 떨어진 외진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장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럼에도 그 말씀에 순종해서 ‘헤브론’으로 갑니다. 그리고 가서, 이스라엘 전체가 아닌 ‘유다 지파’의 ‘왕’이 됩니다. ‘4절 상반절’입니다. “유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곳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유다 사람의 왕으로 삼았다.” 내 생각과는 다르고, 원하는 길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가니까 작은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헤브론’으로 갔고, 그곳에서 ‘유다 사람들’이 와서 그를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이스라엘의 군대사령관 ‘아브넬’이 모든 지파를 대신해 ‘다윗’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높임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기도는 자신의 욕심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 왕’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8장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이 주님께 물었으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예언자로도, 대답하여 주지 않으셨다.” 꿈으로도, 우림과 둠빔으로도,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물어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사무엘상 28장’을 보면 그는 ‘블레셋’이 쳐들어오자 두려움으로 온 이스라엘 군대를 집결시키고 ‘하나님께 승리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무당을 찾아갑니다. 그의 기도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이 요구를 들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다윗’을 쫓아 죽이려고 할 때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저 다윗을 꼭 잡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필요가 채워지고, 문제만 해결되는 자기중심적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매일 시간에 맞춰 기도하지만 그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였고, 헛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울’과 같은 기도는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의 기도는 ‘사울’과 같이 내 요구만, 내 필요한 것만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물론 내 필요와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구하고, 간구하고,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문제, 그 필요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문제와 필요를 간구하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고백하고, 내 생각과 방법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선한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말씀과 순종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기도하며 하나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반면에 북쪽 이스라엘은, ‘사울’의 아들이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8절, 9절’입니다. “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사령관인데, 그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그는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아서,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스보셋’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크게 낙심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 내가 빨리 갔어야 했는데…이렇게 나라가 갈라지는 구나’ 오늘 본문만 보면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 것은 초라해 보입니다. 겨우 한 지파의 왕이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했는데, 그 결과가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적인 힘으로 왕이 된 ‘아브넬’과 ‘이스보셋’은 ‘11지파’의 왕이 됩니다. ‘이스보셋’이 진짜 이스라엘의 왕처럼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욥기서 8장 7절’의 말씀처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처럼,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린 ‘다윗’를 승리케 하십니다.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인본주의적인 자기중심의 교만이 있습니다. 즉 내가 움직여야 어떤 가치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은 다릅니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의 한계를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다고 믿고 신뢰하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내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요행을 바라거나 쉽게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끝까지 겸손히 구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지금은 미약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 기도가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겸손히 구하고, 기다리며 주님의 때에 주님께 쓰임 받게 하소서.
중보 기도(목: 교회 직분자, 봉사자들): 담임목사님과 목회자들의 성령충만을 위해서. 교회 재직, 서번트, 목자, 팀장, 봉사자들 가운데 영육간의 강건함과 성령 충만을 부어주시고 영혼 구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이 땅의 영적 지도자들이 말씀과 성령 충만으로 이 시대를 깨우는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