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히브리서강해 18), 히 11: 1-16, 믿는다는 것은...

2024.08.22 08:54

예수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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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도전 (히브리서강해 18), 히 11:1-16 믿는다는 것은… 찬 488 / 통 539 이 몸의 소망 무언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유명한 장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장부터 10장까지 계속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11장에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10장까지는 조금 어려웠는데 11장은 편하고, 재미있고, 도전도 되는 말씀들이 있어서 좋아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인물들을 살펴보며 왜 그들이 복 받았는지 이유를 찾으며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믿음을 가지면 바라는 것들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상 주신다는 말씀을 붙잡으며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는 믿음이 과연 그런 믿음일까요?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말하고,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살펴보며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3절)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이 성경은 위인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1절에 나오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라고 할 때 바라는 것은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라는 것은 ‘소망 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 말씀, 언약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 위에서 소망을 갖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바로 3절에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이 아닌,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분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주 하나님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바로 ‘믿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되고, 손에 쥐어져야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신앙은 이해가 되어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이해가 되고, 믿어야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이 말씀이 이해가 되어서 믿나요? 아닙니다. 믿어야 볼 수 있고,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그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되어집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13절)

13절에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라고 나옵니다. 7-12절까지 노아, 아브라함, 사라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을 믿음으로 삶을 살아냈던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노아에게 말씀하셨던 것들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들이, 사라에게 약속하셨던 것들이 모두 이루어졌음을 보았고,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셨고 선하게 역사하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하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인자하심, 전능하심, 공의로우심, 선하심을 믿기에 비록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나의 삶의 자리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 같기에 삶의 자리에서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100% 들어주십니다. 다만 Yes로 응답하시기도 하고, NO로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NO가 우리에게 선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6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상’을 ‘내가 바라고 꿈꾸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처럼 열심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왜요? 내가 그만큼 열심으로 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나에게 고통만 남아있을 때 서운함이 표출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상은 그런 상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라고 합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상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상은 출세도, 대박 나는 것도, 로또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영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상입니다.

사랑하는 예수인교회 성도 여러분 결론을 맺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말할 때 무엇을 믿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믿느냐 또한 중요합니다. 1장-10장까지 히브리서가 강조해온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11장은 ‘믿음의 대상’을 강조하고 있는 장입니다. 11장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로 고쳐도 자연스럽습니다. 6절을 볼 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 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로 읽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믿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 새로운 무엇 인가를 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흥’이라는 것은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 그리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나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던 방향을 돌려서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의인’은 착한일 많이 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말씀기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성품인 신실하심, 인자하심, 공의로우심, 선하심을 믿으며 살아가게 하시고, 천국을 소망하고 영생을 믿으며 믿음의 나그네의 삶을 살게 하소서.

중보기도(목:지도자/가정/나라의 위정자):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한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 되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 맺게 하소서, 가정이 사랑으로 회복되고 말씀으로 비전을 보게 하소서, 나라의 위정자들이 깨어서 잘 이끌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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