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전 (히브리서강해 17), 히 10: 19-39, 믿음의 삶은 불편해야 합니다.
2024.08.21 10:36
예수인교회
히 10: 19-39, 믿음의 삶은 불편해야 합니다. 찬436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히브리서는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던 성도들에게 참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믿음의 도전과 회복’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중에서도 자신의 죄와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사람,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실 거야, 내 기도는 들으시지 않으실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 성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미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1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성경을 많이 읽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나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담대함’이란 헬라어의 또 다른 뜻은 ‘특권’이란 뜻입니다. 이 담대함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우리는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는데” 이 말씀을 보면 이것은 ‘과거형’으로 이미 ‘우리가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그 담대함과 특권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확실히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모습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특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리시고 죽으실 때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쫙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이제는 사람들이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길’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가로막힌 것이 쫙 갈라져서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을 믿는 겁니다. 우리의 형편과 상황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렵지만, 믿고 나아가는 겁니다.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가는 겁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는 ‘담대함, 특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1, 2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내 능력과 자격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지만, 예수의 피가 내 마음에 뿌려져 그 은혜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소망을 굳게 지킵시다.” 하나님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능력과 의지로는 세상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이 믿음은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스스로 검증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른다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바로 믿음은 우리 안에 예수가 함께 하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에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담대함이 우리를 어떤 죄에 빠져 있는 가운데도 그 절망에서 우리를 다시 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처럼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도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이, 그렇다고 또 다시 죄를 지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본문 2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은 뒤에도 짐짓 죄를 짓고 있으면, 속죄의 제사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즉 복음의 진리를 알고, 죄사함을 받은 후에도 반복되는 죄를 짓는다면 속죄를 받지 못한다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믿음이 주님과 함께 하는 담대한 믿음인지, 잘못된 믿음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매사에, 내 삶속에서 항상 주님이 의식이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진짜 주님과 함께 살면 우리의 삶이 불편해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함부로 못하고, 행동도 제대로 못하고, 마음대로 살지도 못하고, 주님과 함께 하니까 이것도 신경 쓰이고, 저것도 신경 쓰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내 삶에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면, 그 삶은 어떤 삶이겠습니까? 내 안에 계신 주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삶은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내가 진짜 믿고 사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속에서 주님을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삶에 진짜 주님이 함께 하시고, 내가 그 주님을 의식하며 살면, 내 삶은 반드시 달라집니다. 그래서 ‘33, 3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때로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또한 자기 소유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일을 기쁘게 당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환란도, 두려움도, 질병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확신에는 큰 상이 붙어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 성도의 소망은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의 소망이 아니라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상급과 복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생명되시는 주님과 함께 담대히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제목: 내 삶속에서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고 인식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그래서 세상 가운데 담대히 주님을 선포하며, 상황과 형편을 이겨나가는 하늘과 땅의 축복을 누리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중보기도(수: 다음세대): 교육부, 유스, 청년들, 자녀들과 손주들 가운데 성령 충만을 부어 주셔서 구원의 확신과 믿음의 담대함을 품고 다음세대를 주님의 세대로 변화 시켜 나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다음세대를 깨울 수 있게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